“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8,16)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라는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신영복은 주역의 기초 개념을 강의하는 과정에서 ‘위位와 응應’에 대한 설명을 한 부분이 있는데, 그 내용이 예수님, 등불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기에 그의 주장에 기반으로 오늘 복음을 생각해 봅니다. 신용복에 의하면 ‘위位’는 자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불이 등경 위에 있으면 득위得位, 곧 제자리를 차지하여 방 안을 환히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아래 있으면 실위失位, 곧 제자리를 잃게 되어 아무리 밝게 빛난다 해도 방안을 밝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 만물은 고유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등불의 자리가 등경 위인 것처럼, 사람도 그 사람에 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흔히 교구장이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일컬어 주교좌성당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좌座는 곧 주교가 앉는 의자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앉아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득위得位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밝게 빛나는 것을 응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결국 그 자리에 걸맞은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등경 위에 있는 등불이 꺼져 있다면 방안을 밝힐 수 없습니다.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전제하면서, 오늘 복음에서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8,16)라는 말씀에서 등불은 자명하게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이 세상에 왔다.” (요1,4.9)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8,12) 세상의 빛이요 등불인 예수님은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여 있으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두운 세상에 당신 존재와 당신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진리와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로써 등불이 예수님이라면 등불을 올려놓는 등경은 십자가 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등불인 주님을 환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밝히 알려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을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8,17)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바탕으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비밀은 드러나고야 만다, 는 격언이 생겨났고 우리 일상에서 정치인들이나 재벌 그리고 공무원의 은폐 공작과 정보 조작 등의 사례에서 자주 들어왔습니다. 물론 교회의 비리와 잘못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나요. 언젠가는 그 진실은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지금 숨은 행적도 장차 하느님의 심판 때에는 반드시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물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다 알려지기에는 시기상조이고 적절치 않아서 많은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결국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드러나고야 만다는 뜻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 조급하지 말고 오히려 꿋꿋이 복음을 힘차게 선포하도록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10,26-27;루12,2-3)
세상의 빛이요 등불인 예수님과 하늘나라에 관한 복음은 감추거나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있어야 할 가장 적합한 자리에서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의 등불인 주님의 빛은 훤히 더 발광發光하리라 봅니다. 결국 세상의 등불인 주님은 바로 우리 자신이 가장 적합한 삶의 자리에 앉아 그에 걸맞은 충실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진리는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아울러 예전 ‘이어령’ 교수는 당신의 한 에세이에서 영어 단어 niche(=적합한 지위, 장소. 꼭 맞은 자리나 역할)를 예를 들면서, 바다의 물고기들도 하물며 자신에 가장 적합한 수심, 자리에서 생활한다고 말하면서 무릇 참된 인간이란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가장 적합한 niche를 알고 찾을 때 인생의 충만한 삶을 꽃피울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등불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제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리가 가장 적합한 자리, 곧 得位하고, niche한 자리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봅니다. “주님, 지금 제가 지금 여기 머물러 있는 이 자리가 저의 꽃자리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