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작은 선행이 믿는 이의 등불로 드러나면 / 연중 제25주간 월요일(루카 8,1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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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9-22 | 조회수6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은 선행이 믿는 이의 등불로 드러나면 / 연중 제25주간 월요일(루카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 어부는 먼 바다에서 항구로 돌아오다가 등대의 빛을 보면 평화로워진단다. 어부에게 빛은 편안한 안식이니까. 우리에게도 빛은 희망의 상징이다. 새해에 많은 이들은 해맞이 간다. 신앙의 빛은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비추고 기쁨을 담뿍 안긴다. 그 빛은 은총을 몰아오고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 그 빛은 사라지고 불안과 괴로움이 스며온다. 우리는 신앙의 빛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보호할 게다. 이 세상의 풍파와 고뇌에서도 은총의 빛을 따라가면서 어두움을 물리쳐야 하리라. 세상 것 가진 자와 하느님 나라 것 가진 자는 서로 반대일 게다. 세상 것은 채울수록 창고에 곡식이 쌓여 부자 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 것을 버려야만 부유한 이가 된단다. 거기에는 정녕 가진 자는 자신을 온전히 비운이 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현상을 빈익빈 부익부라고 흔히들 일컫는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병폐가 점점 심해진다는 우려가 높다. 사실 가난한 이를 위한 복지는 다만 구호일 뿐, 사회 환경은 철저하게 기득권층만을 중심으로만 되어 있다나. 하느님을 얻으려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걸 맛보고자 하는 이도 소유욕에서 멀어져야 하리라. 또 모든 걸 가지려는 이는 어떤 것도 가지지 않아야 한단다. 모든 것에 무(無)가 될 때에 하느님께서 그 자리에 들어오시리라. 그분께서 그 ‘빔’을 채워주신다고 믿는 게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목표일 게다.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놓는 사람은 없단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주님 사랑하는 이는 그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이에게는 기쁜 일이 더 많이 생긴다. 나에게 기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쁜 소식인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는, 늘 기뻐해야 한다. 어쩌면 등불을 켜는 이유는 어둠에서 자유로워지려는 빛을 비추기 위함일 게다. 그리고 그것을 등경 위에 얹는다. 될 수 있는 한 빛이 더 멀리 비추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이는 그 등불과 같다. 우리가 선행을 실천하면 빛이 사람들을 비추고, 그들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함께 찬양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비추는 참 빛이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등불을 자신과 이웃에게 비추게 될게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등불을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올려놓아 들어오는 이들 모두에게 보이게 한다. 하느님 말씀은 이웃 사랑의 결실인 선한 행위로 모든 이에게 환히 드러나리라. 이렇게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대한 봉사가 조용히 자리 잡을 게다. 그러한 삶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작은 선행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등불’로 드러나면 참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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