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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성 빈첸시오 사제 기념(연중 제25주간 금요일): 루카 9, 18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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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26 조회수73 추천수1 반대(0) 신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9,20)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이 단순한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복음서를 집필한 네 명의 복음사가들은 후대 사람들의 의문에 대해 많은 정보나 힌트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거의 95%는 복음서의 기록에서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과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12,8)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먼저 G.K. 체스타톤의 다음 글을 읽으면서 대답을 위한 힌트를 얻길 바랍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키가 크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작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뚱뚱해서 싫다 하고, 어떤 이는 그가 너무 말라서 안됐다고 한다. 누구는 그의 피부색이 너무 검다고 말하고, 누구는 너무 창백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우리는 황당해한다. 이런 경우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 그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일지 모른다. (...) 간단히 말해서 어쩌면 이 비범한 존재야말로 정말 평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가장 정상적이며 중심을 지키는 사람 말이다.』 이어서 윌리암 블레이크의 다음 글 또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대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내가 보는 형상과 전혀 반대라네. 그대의 그리스도는 그대처럼 매부리코, 나의 그리스도는 나처럼 들창코, 둘 다 밤낮으로 성경을 읽건마는 그대가 검정이라고 읽을 때 나는 흰색이라고 읽네. 』

위에 언급한 내용을 마음에 간직해 놓고 잠시 상상해 보도록 합시다. 지금 어떤 사람이 자기 방의 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높이 서 있어 이젠 거리를 볼 수 없지만,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거리에 있는 어떤 사람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키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건물에 가려서 그 사람이 무얼 가리키고 있는지 자신의 방 창문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어떤 것도 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오신 지 2000년 넘은 오늘이란 시점,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창가에 서 있는 어떤 사람과 비슷한 입장입니다. 윌리암 블레이크의 시에 잘 드러나듯이, 우리는 때론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만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학자인 ‘바버라 터크만’이라는 분은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규칙이란 다름 아닌 『앞으로 빨리 감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역사학자는 그 역사적 사건의 분위기를 재창조해서 『독자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과거 교회의 역사는 터크만의 주장과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빨리 감기’의 시각을 견지한 채, 복음서를 연구하고 가르쳐 왔는지 모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우리 모두 ‘앞으로 빨리 감기’ 식의 통상적인 대답이 아닌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듣고 보고 느끼고 만져 보면서’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9,18)라는 표현처럼 무엇보다 먼저 기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야만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도 안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빨리 감기식의 영혼이 없는 주입된 대답이 아닌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만남을 통한 살아 있는 대답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9,20)하는 질문은 관계적인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누구를 믿고 있으며, 또한 내가 누구인지, 를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서 믿음의 핵심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이다,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12,8)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모르지만, 아빠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저희도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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