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6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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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9-28 | 조회수316 | 추천수4 | 반대(0) |
지난주에 ‘본당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 속에 본당의 날이 잘 끝났습니다.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믿음과 미신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이 믿음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 믿음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미신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바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울기도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이미 포도원이 많이 있음에도 나붓의 하나 밖에 없는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미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다윗 왕은 하느님께 기름부음 받았던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미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 또한 ‘내가 믿음의 삶을 사는지, 미신의 삶을 사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성숙한 신앙과 미성숙한 신앙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숙한 신앙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 길이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신앙은 성서를 읽고, 교리를 잘 아는 지식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숙한 신앙은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활동을 많이 한 업적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신앙은 성직자와 수도자처럼 직책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쁘게 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더 좋은 땅을 조카 롯에게 기꺼이 양보한 아브라함, 사랑하는 아들을 하느님의 제단에 기꺼이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겼던 형들을 용서하고, 품어 주었던 요셉은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용감하게 왕 앞에 나섰던 에스테르 왕비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고백했던 마리아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성숙한 신앙인일까요?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사람이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짜증내는 사람이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시기심에 동생을 죽인 카인은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했던 카인은 미성숙한 신앙입니다.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는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유다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잘 안다고 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중에도 미성숙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미성숙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미성숙은 직책으로도, 능력으로도, 지식으로도 가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성숙한 신앙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성숙한 신앙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손을 버려야 한다.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더 좋다.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발을 버려야 한다.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 한 발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더 좋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눈을 버려야 한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 보다 한 눈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이 더 좋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 것은 생각으로 죄를 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손에 못이 박힌 것은 손으로 죄를 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발에 못이 박힌 것은 발로 죄를 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창에 찔리신 것은 미성숙한 신앙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성숙한 신앙인이었다면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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