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루카 10, 17 - 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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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10-04 | 조회수10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10,20)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젠 부모님 다 돌아가셨기에 나의 기쁨을 온전히 나눌 사람이 없음을 새삼 절실하게 느낍니다. 주님 안에서 사제로 살아가면서 제가 느꼈던 모든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었던 사람은 제 엄마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아직 살아 계신다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엄마가 저의 변화를 보고 참으로 기뻐하셨을 겁니다. 엄마 살아 계실 때도 지금처럼 스마튼 폰이 있었으면 매일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했을 텐데, 사실 엄마 돌아가셨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주 전화할 수도 없었죠. 전화로나마 제 목소리를 듣길 좋아하셨던 엄마에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화로 통화했던 그때가 참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이젠 제 기쁨을 누구와 함께 나눌 수 있을까요?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10,17)라는 언급에서 제자들이 스승이신 예수님께 그렇게 황급히 되돌아와서 기쁨에 넘쳐 말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실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명으로 파견된 제자들 역시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파견되었을 때 아무것도 지참하지 않은 빈손이었으며, 또한 이런 일을 독자적으로 해 본 적도 없었으며, 각자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질을 생각할 때 그들은 사실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활동한 결과 자신들이 예상하지 않은 일들, 곧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복종함”(10,17참조)을 체험하면서 그들 자신이 먼저 놀랬고, 그런 결과에 대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들떠서 예수님께 한 걸음씩 달려왔던 겁니다. 모든 제자의 놀라운 결과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한 자리는 그야말로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자리였을 것이며 그 시간은 모두가 기쁨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너무 감격에 벅찬 나머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 이젠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10,18~19)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아마도 널뛰듯이 기뻐 환호하였으리라 봅니다. 물론 이는 훗날 사도 바오로가 “죽음도, 삶도 그 밖의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8,38,39)라는 고백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제자들의 결과를 칭찬해 주시면서도, 세상에서 제자들이 이룬 일의 성과보다도 더 중요한 점은 바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10,20)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의 참 기쁨은 누구에게서 나오며 어떤 것인가를 환기시켜 줍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런 모든 일의 결과가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곧 아빠의 마음속 깊이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은 아빠 하느님께서 참으로 좋아하시며 바라시는 일이며,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능력이라기보다 예수님 이름 때문이며, 아버지 하느님의 보살핌과 도와주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 역시도 타인으로부터의 칭찬과 찬사에 우쭐대며 기뻐할 일이긴 하지만 이 보다도 하느님의 도구이며 연장으로 쓰임 받았음에 감사하고 아빠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모든 칭찬과 찬사는 오로지 주님의 이름으로 돌려 드리고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하도록”(1코1,31)해야 합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10,21) 제자들로 인해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신 예수님도 지난至難했던 지난 순간을 떠오르면서 벅찬 기쁨과 보람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철부지와 같은 제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이로써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파견 사명이란 곧 아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하느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철부지이며 못난 제자들을 통해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을 목격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10,21)하고 기쁨에 넘쳐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아빠 하느님 앞에서 제자들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충만하고 감사로 넘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도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은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10,23.24)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일이 아빠 하느님께는 큰 기쁨이 되시지만, 또한 그 일을 하면서 우리는 어떤 누구도 알지 못했고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알게 되었다.”(10,22)라는 사실에서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이며 이미 참 행복을 보고 듣고 만지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이지만 세상 앞에서 주춤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늘나라의 신비 곧 아빠 하느님을 알았음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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