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르 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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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06 | 조회수128 | 추천수3 | 반대(1) 신고 |
* 오늘의 말씀(10/6) : 연중 제27 주일 * 제1독서 : 창세 2, 18-24. * 제2독서 : 히브 2,9-11. * 복음 : 마르 10, 2-16.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연주 27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는 혼인의 의미를 되새겨 줍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여 서로 결합하여 한 몸이 되게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고, 우리 모두는 그분 한 분에게서 나왔음을 말해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남녀의 결합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혼인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말해줍니다. <첫 번째 원칙>은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마르 10,6)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것과 우리의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느님의 고유한 작품으로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따라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또한, 남자나 여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창조되었다는 것과 서로에게 내어주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서로 보완해서 한 몸을 이루어 가야 할 똑같은 무게, 똑같은 권리, 똑같은 의무를 지닌 동등한 동반자로서 서로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할 하느님의 작품임을 드러내줍니다. <두 번째 원칙>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는 것입니다. 이는 혼인이 단지 서로를 위한 인간적인 “약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짝 지워주신 “성사로서의 서약”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혹은 서로가 결혼합의를 취소하면 그 관계가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인간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뗄레야 뗄 수 없는 결속력을 지닌, 아무리 당사자들이 그 합의를 취소하더라도 결코 풀어지지 않는, 하느님 안에서 맺어진 ‘서약’임을 말해줍니다. 곧 상호신뢰의 인격 관계로 묶어진 평생운명 공동체로의 ‘서약’입니다. 그래서 <혼배성사>에서 혼인서약을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 ~~는 당신을 아내(남편)로 맞이하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는 어디서나 어떤 처지에서나, 서로 사랑과 존경으로 결합하여 함께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두 사람의 서약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서약입니다. 수도자들의 서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와 서약임과 동시에 하느님과의 서약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은 상대를 아내로 혹은 남편으로 맞이하여 평생토록 한 몸을 이루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러니 결혼은 한 몸을 이루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드러내줍니다. 곧 일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치를 향한 여정이 비로소 시작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한 몸을 이루어 나가야 할 과제와 의무를 함께 지는 시작이요, 서로의 부족함을 껴안아주며 사랑과 존경으로 함께 나아가는 영적동반자요 협력자로서의 ‘서약’입니다.
그런데 서로의 부족함을 껴안은 사랑과 존경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곧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서로의 자녀인 아기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나아가서 아기는 자녀만이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아기이기도 합니다. 남편이라는 철부지 아기와 아내라는 힘없는 어린아이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서로의 무력함과 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사실 자녀인 아기를 사랑하기보다도 남편이나 아내 혹은 공동체의 동료라는 아기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대를 우러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서로를 존경함이야말로 진정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결혼서약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을 이루어 나가는 부부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전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예레 31,3)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르 10,8)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더불어 한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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