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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배움의 여정, 사랑과 섬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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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07 조회수97 추천수7 반대(0) 신고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 10월7일은 묵주기도 성월 10월에 맞이하는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오늘 기념일에 대한 유래를 나눕니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1208년 프랑스 남부 카르카손 근처 프루이유에 있는 수도원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성 도미니코에게 나타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묵주기도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날은 바로 1571년 10월 7일, 바로 오늘은 그리스 앞바다 레판토에서 유럽의 명운이 걸린 이슬람 제국과의 해전이 벌어졌던 날입니다. 이날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신성동맹의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의 해군은 치열한 격전을 벌렸고 마침내 유럽 기독교 국가 동맹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날은 10월의 첫 번째 주일이었고,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비오 5세의 독려하에 하루 종일 모든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쳤으며 결국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승리했다 하여 시작된 오늘 "승리의 성모 축일"입니다. 이후 교황 비오 10세는 10월 첫째 주일이었던 축일을 10월7일로 확정시켰고, 1969년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승리의 성모 축일” 명칭에서 지금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기념일로 바꿉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10월 묵주기도 성월, 묵주기도의 은총이 우리 ‘배움의 여정’, ‘사랑과 섬김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의 복음을 갈라인들 교회에 선포합니다. 바로 구원은 능동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인간에게 가능하다는 복음이요, 오늘 복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을 통해 그대로 입증됩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의 불순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만 그의 질문은 옳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모든 구도자들의 궁극적 질문입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역으로 율법학자의 생각을 묻자 그는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옳게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니 율법학자는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물은 것이요 이를 간파하신 예수님의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하였습니다.”

모든 율법과 복음의 요약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정답을 지체없이 인정하시고 흔쾌히 답하십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하면 영원한 생명을 살 것이란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유명한 예화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이 복음은 35년전 제 사제서품후 1989년 7월16일 신림동 천주교회에서 첫미사때 복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때 “사람이 되는 길”로 강론을 했고,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자를 외면하고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종교인인 어떤 사제도, 어떤 레위인도 사람됨의 시험에 불합격했고 이 죽어가는 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살린 사마리아인만이 사람됨의 시험에 합격했다 강조했습니다. 사실 이 '사람됨의 시험'에 합격할 사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초주검이 된 자는 수난당하는 주님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종교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참으로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부끄럽게 하는 놀라운 충격적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초주검이 된 자에 대한 세 사람의 경우의 예를 든 후 율법학자와 주고 받은 대화가 오늘 복음 이해의 열쇠가 됩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 동사입니다. 뜬구름 잡는 추상적 질문은 이제 그만하고 네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느님 사랑에 이어 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사랑의 실천으로 도우며 영원한 생명을 살라는 것입니다. 저 멀리 밖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곤경중에 있는 이웃을 도울 때 영원한 생명의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내 중심의 “누가 내 이웃이냐?”물을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 곤경중에 있는 불우한 이웃을 중심에 두라는 것입니다.

 

참 놀랍게도 곤경중에 있던 자를 살린 자는 거룩한 종교인인 사제도 레위인도 아닌 이교인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이런 사마리아 사람처럼 곤경중에 있는 이웃이 되어 이웃 사랑의 진수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 검증되는 법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충격적 사랑을 통해 독자들 역시 배우라는 것입니다.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수도자는 물론 믿는 이들의 두 필수적 자질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요 ‘배움에 대한 사랑’이요, 이를 위한 겸손과 근면입니다. 배움에 대한 사랑의 달인(達人)은 호학(好學)의 공자이고 호학은 논어와 공자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무엇보다 배움의 여정중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내 중심의 이기적 물음에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 이웃 중심에서 물어야 할 것이며, 이웃 중심의 섬김의 삶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섬김의 사랑의 절정의 모범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주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 이웃 중심의 섬김의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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