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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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0-07 | 조회수10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루카 10,25-37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이는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는 하나, 이 안에는 율법교사의 편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해드려야 그 대가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즉 구원을 본인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가치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자신의 ‘행위’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임을, 또한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내가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라는 ‘존재’에 달려 있는 일임을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율법교사는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계명’의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한편, 자신이 그 계명을 그저 머리로만 아는게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충실한 사람임을, 다시 말해 자기가 구원받기에 합당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어서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는 자신이 하느님 사랑이라는 계명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또한 누가 자기 ‘이웃’인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답하시는 ‘이웃’의 범주가 자신이 예상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러면 저는 이미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답할 태세였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예수님께 그런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그가 하느님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맙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나처럼 당신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자 나의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가 내 이웃인지 구분하는 일 따위는 집어치우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면 될 일이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는 건 내 안에 ‘자아’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사람을 대할 때에도 그가 나에게 이익이 될지 아닌지만 따져가며 차별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 속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나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강도를 당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이익과 손해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혹시라도 이미 그가 죽은 사람이라면 그를 손으로 만진 자신이 율법적으로 부정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종교인으로써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니, 아예 모르는 척 그냥 지나쳐버리는 길을 택하지요.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이익이 아니라 연민의 마음으로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우상숭배자’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를 ‘가엾이 여기는’ 그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는 타인의 아픔을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길에 쓰러진 사람이 감내하고 있을 고통과 수치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를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 정성껏 간호해줍니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인데 그를 두고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 자기가 꼬박 이틀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꽤 큰 돈을 맡기며 그를 잘 돌보아달라고 부탁하지요. 예수님은 당신께 질문한 율법학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적당히 눈치를 보며 대충 하려고 드는 우리에게, 그 사마리아인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고,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참된 이웃이자 형제가 되어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참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되어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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