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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루카 10, 38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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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07 조회수99 추천수2 반대(0) 신고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10,42) 


경험적으로 소박하고 단출한 식단이지만 단품 식사가 마음 편합니다. 그래서 많은 반찬으로 가득 찬 뷔페 식사가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여러 가지 많은 음식을 먹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 기분 좋은 포만감보다 불편한 더부룩함으로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을 겁니다. 과한 것보다 약간 모자란 게 낫다는 말도 있듯이 정성이 담긴 작은 음식이 많은 음식보다 더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 만족감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몇 년 동안 원외 거주할 땐,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혼자 있으면서도 주어진 외부 활동 곧 병원 원목 신부로서의 제 소임에 충실하고, 운동도 열심히 할뿐더러 꾸준히 독서도 하면서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도 중요하지만 제게 꼭 필요한 영적 운동, 곧 기도 생활을 충실히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분주한 활동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영혼을 고요하게 유지하느냐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려면, 활동의 회전 바퀴 중심에 고정된 축이 굳건하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고정된 축이 있다면, 바퀴가 아무리 빨리 돌아도 그 축은 중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축이 바퀴를 돌려주는 것입니다. 축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바퀴가 요동치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아 모든 일이 뒤 틀려 멈추고 맙니다. 고정된 축에서 안정이 나오는데, 이는 바퀴가 축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고요함은 바로 바퀴가 축에 고정됨에서 나옵니다. 우리 시대만이 아니라 성서의 시대에도 이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런 우리네 삶의 문제를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집 안에 살아가고 있는 두 자매에게서 드러나고 있는데, 한 사람은 고정된 축이고, 다른 자매는 그 축에 끼여 돌아가는 바퀴와 같습니다. 마리아는 고정된 축이고, 마르타는 돌아가는 바퀴입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한순간이지만, 잠시 고정된 축에서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긴 여정으로 인해 지치시고 피곤하셨기에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시장하셨을 겁니다. 오랜만에 자기 집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마르타에게는 오직 음식 대접을 필요하는 손님으로만 보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당하신 거부와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겪어야 할 수난은 그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잠시라도 그 짊을 내려놓고 누군가가 자기 곁에 머물면서 관심과 이해의 시간과 자리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예수님도 누군가 당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에게 말해 보았지만, 앞으로 겪을 수난에 대해 예고할 때마다 다들 진저리를 내고 들으려는 마음이 없음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런 주님에게 마르타는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10,40)라고 마리아에 대한 분노를 예수님께 쏟아 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10,41)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마르타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진정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예수님은 에둘러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마르타에게는 회전하는 활동의 고정축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의 고요함을 잃고, 식사 준비가 음식을 먹는 사람보다 중요해질 때, 바퀴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요함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영원히 가치 있는 한 가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단 한 가지 그것은 사람이며, “주님 발아래 앉아 있는 것”(10,39)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눈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저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은 중심 단어는 “좋은 몫”(10,42)이란 표현입니다. 여기서 좋은 몫이란 곧 주님과의 교제, 친교입니다. 그러니까 마르타가 준비 중인 음식과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양분과의 대비해서, 식사의 가장 좋은 몫은 부엌에 있지 않고 마리아가 앉은 자리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말씀의 잔치에 무게가 더 쏠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친교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수많은 식단을 두루 갖춘 뷔페 식사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뷔페는 먹고 나면 부담스럽고 불편합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와 우리 모두에게 삶을 단순화해야 하고, 중요한 한 가지 일에 초점을 모으고 그 일에 열정을 쏟기를 바라십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고있는 그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섬기고 있는 주님에게서 우리의 시선이나 관심이 분산되어, 다른 일에 정신을 팔려서는 아니 됩니다. 갈라진 마음 없이 주님 곁에 머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을 갈라지게 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어떻게 온전함을 유지하고 생활할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씨름해야 하는 물음과도 같습니다. 그 해답은 오늘 복음의 마리아처럼 하면 됩니다. 주님 발아래 앉는 쪽을 선택하면 됩니다. 거기가 바로 우리 모두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는 많은 일이 한 가지 일에 굴복하는 곳이며 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주님 발아래 내려놓고 그분의 보살피심을 받아들이면서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때엔 예수님께서 받는 존재가 아니라 베푸시는 존재가 되실 것이며,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태20,28)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온전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가 참석하고 있는 성당에서 우리 모습을 성찰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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