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 |||
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0-11 | 조회수326 | 추천수6 | 반대(0) |
본당 교우들과 함께 ‘야구장’엘 다녀왔습니다. 돔구장이기에 더운 날씨임에도 안에는 시원하고 쾌적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주일하교 학생들과 갔었고, 이번에는 어른들과 함께 갔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번에는 3 : 2 로 이겼고, 이번에는 2 : 0 으로 이겼습니다. 홈팀이 이기는 경기는 경기장을 찾은 관중에게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부주임 신부님과 저는 사제복을 입고 갔습니다. 교우 한 분이 제게 ‘신부님은 야구장 갈 때도 사제복 입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옷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제복이 편해서 입고 다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즘은 사제복도 기능성 사제복이 있어서 땀 흡수도 잘 되고, 금세 마르기도 해서 좋습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눈이 먼 소경이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소경에게 ‘당신은 볼 수 없는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소경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캄캄한 밤에 등불을 보면 제가 있는 걸 알고, 피해 할 겁니다.’ 제게 사제복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위해서 봉헌된 사람이고, 사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사람입니다.’라는 걸 알려 드리는 의미도 있고, 저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것은 저처럼 사제복을 입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손에 묵주 반지를 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차에 묵주를 걸거나, 십자가를 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집에 십자가 고상을 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유대인의 율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주는 사람입니다. 겉옷을 빌려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빌려주는 사람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십자가는 물론 이웃의 십자가도 기꺼이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기차는 연결된 객차가 많아도 늘 같은 방향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피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뭔가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마치 ‘바벨탑’과 같습니다.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단순한 가족의 틀을 벗어버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성이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우리를 모두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한다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삶의 우선순위로 정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제들이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인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