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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루카 11, 27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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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11 조회수86 추천수4 반대(0) 신고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11,27)

조금은 낯설고 쑥스러운 고백입니다. 제 엄마 돌아가신 마지막 순간에, 제 여동생이 왜 저에게 ‘오빠, 마지막으로 엄마 젖 만져’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전 제 엄마 젖가슴을 만졌습니다. 자식에게 엄마의 젖가슴은 단지 생리적인 젖가슴이 아닙니다. 제 엄마는 모태로 저를 배고 낳았다면, 사랑과 생명의 젖가슴으로 저를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죽어가는 그 순간 엄마의 젖가슴을 만진 것은 바로 그 생명과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저의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제가 한 행동이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참 잘했고, 그래서 불현듯이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얼굴이 아련히 생각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한 군중 가운데 어떤 여자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7)라고 목소리를 높여 칭송합니다. 이런 감동적이고 감탄스러운 표현은 오직 본인 스스로가 자식을 낳아 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과 그 어머니로부터 삶과 사람에 대한 감사와 고귀함을 듣고 배웠기에 가능하다, 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즉 자식의 위대함은 어머니의 위대함이기도 하며,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입니다. 어머니란 존재는 세상의 가장 지혜롭고 따뜻하며 인자한 스승입니다. 세상에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저는 고백합니다. 이 여자의 고백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에게 대한 엘리사벳의 예언(1,39-45)의 성취이며 반향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1,42) 엘리사벳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대한 행복 찬양을 교회는 성모송을 통해 유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칭찬을 인정하셨지만, 혹여라도 무슨 오해나 착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11,28) 즉 여자가 말한 행복은 육체적인 기쁨에서 오는 행복이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영적인 차원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있으며 그 완전한 전형이요 모델이 다름 아닌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님은 정녕 복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이시기에 복되신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참된 제자이며 신앙인이기에 복되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땅 위에 살았고 살아가는 모든 여인 중에 가장 복된 여인이시며 어머니이신 것입니다. 아드님 생전에 어머니의 삶은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이 늘 교차되는 삶을 사셨지만, 오늘 복음의 이 여자의 표현대로 이제는 성모 마리아의 육신적인 母性을 찬양한다, 고 해도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더 강조해야 하리라 봅니다. 오늘 우리 세대가 다시 母性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마리아의 모성을 드러내 놓고 알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모성을 잃어버릴 때 세상은 그만큼 사람 냄새를 잃어버리게 되고, 사람 냄새를 잃어버리면 그만큼 세상은 살맛을 잃고 그 모성의 인자함과 자비로움과 따뜻함과 포근함을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이 되어 가리라 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몸을 잉태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었던 점에 있어서 더욱 복되신 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가졌기에 어머니는 아들이 걸어가신 십자가 길을 함께 따라가며 고통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내 가족과 친구와 가까운 이웃이 하느님을 외면하고 진리인 말씀을 거부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어찌 나 혼자만의 행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신들의 모성을 제대로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하고 포근해질 것이지만, 자기 자식만을 아낀 채 다른 아이들을 경쟁과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무관심과 냉대로 대응하고 반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오직 내 자식만이 보이고, 오직 내 자식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다시 아름다운 세상,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파스칼은 모성애에 관해서 말할 때면 언제나 그 특징적 장점으로서 합일의 정열을 들기도 하지만 아울러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모성의 분리의 정열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남녀의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모성애는 하나였던 것이, 두 사람으로 나뉘는 사랑입니다. 어떤 면에서 모성애란 이별과 상실을 최종 목표로 한 서글픈 사랑입니다. 자식이 때가 되면 어머니의 품을 떠나 날아가도록 해 주는 것이 모성애임을 제 어머니는 수도원에 입회하려는 제게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니로서의 최종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식을 멀리 놓아주는 능력, 이기심이나 독점욕이나 지배욕을 버리고 그 대신에 이타심을, 주는 능력을 사랑하는 자의 행복만을 바랄 뿐 보답을 바라지 않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칭송한 어떤 여자의 감탄스러운 찬사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합니다.”(11,28)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언급은 바로 다름 아닌 모성애의 합일의 정열과 분리의 열정을 지니신 어머니 마리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고 봅니다. 성모 마리아는 모든 어머니의 참 위로자이시며, 모든 어머니의 참 표본이고 표양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성모님의 참 행복을 자녀들로부터 받게 되기를 바라고 또 기도합니다. “주님, 저나 우리 각자에게 어머니를 통해서 당신이 사랑이심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 저희 각자의 살아 계신 어머니들께는 건강을, 돌아가신 어머니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베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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