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재물은 한순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 / 연중 제28주일 나해(마르 10,17-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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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12 | 조회수9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재물은 한순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 / 연중 제28주일 나해(마르 10,17-22) 사상가 루소는 인간이 한 평의 땅뙈기에 울타리를 치고서, “이것은 내 것이야!” 라고 외친 날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나. 그것이 왜 불행의 시작일까? 그것은 인간이 본래 하느님의 소유물을 영원토록 자기 것이라고 여겨, 그 땅에다 자신의 마음을 묻어 울타리로 가두었기에. 그렇게 인간은 빌린 거기를 울타리치고는 타인을 경계한다. 혹시 누가 내 울타리를 넘지는 않을까? 땅 주인인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면서 계약해 주었는데, 일정 기간 월세로 들어온 세입자는 건물주의 관심 대상자인 그 ‘이웃’이 위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가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는 계명들을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이에 그는 당당하게 답하였다. “그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가 있다. 지금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물론, 그곳의 보물마저 다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는 와서 나를 따라라.” 그는 이에 울상이 되어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실 재물이 어떤 이에게는 삶의 목적이기에 생명보다 소중할 게다. 그런 생각으로 재물을 많이 가진 이가 예수님을 찾았다. 그분께서는 그를 제자로 부르시지만, 그는 머뭇거리다 포기했다. 무엇이 그를 돌아서게 했을까?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다 주고오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단지 아까워서 그랬던 걸까? 그를 머뭇거리게 한 것은, 재물에 대한 그의 욕망이었다. 이처럼 재산을 축적하면 사심 없던 주변 관계가 변한다나. 부는 또 다른 가난을 가져온다. 그 가난이란 벽 쌓음으로써 이웃과 단절되는 고독으로 이어지기에. 현대인들의 모습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많은 이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잘 모르는 채 지낸다. 문을 꼭꼭 잠그고 산다. 서로서로 바라보기는커녕 외면한 채 산다. 베풀 자비는 간데없고 지키고 더 갖는 데만 혈안이다. 재물과 명예를 움켜쥔 이는 갇힌 비좁은 시야에서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두려움만 쌓여 불행하다. 가진 것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뿐이다. 흔히 보답바라지 않은 채 남 돕고 가진 것 나눌 때, 참 기쁨 느꼈다나. 남도우면 도움 받는 이도 기쁘지만, 도와주는 이 역시 뿌듯한 마음일 게다. 결국 나누며 사는 것만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나눌 때만이, 정녕 행복해지리라.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말로는 멀리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지만, 실제로 당장은 지금 여기서 하는 일마다 바라는 그대로 좀 슬슬 잘 풀리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가정 기도는 물론 미사도 참여한다. 은근히 가진 것보다 더 가지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그러나 그분께서는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치지 말고, 가진 것마저 나누라면서 매몰차게 대한다. 남 돕고 자선을 베푸는 이의 시야는 넓혀진다. 영원한 나라에 보물 쌓는 지혜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이에게는 세상 부귀영화를 초월하게 한다. 욕심을 버리고 영원한 가치에만 마음을 몰두하기에. 세상의 영광과 존귀함은 하느님 앞에서는 비천하고 비참함이다. 영혼을 일깨우는 그분 말씀만이 만고의 지혜다. 하느님만을 보는 이는 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을 대체할 수 없음을 안다. 하느님만을 믿는 신앙인은 세상 재물은 한순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을 깨달은 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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