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지혜롭고 영원한, 자유롭고 행복한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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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0-13 | 조회수140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기도하라, 공부하라, 따라라”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가 기뻐하리이다.”(시편90,14)
화답송 후렴이 진리입니다. 주님의 자애가 우리를 채울 때 참 기쁨과 행복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어지럽고 험한 세상일수록 추구할 바 지혜로운 삶, 영원한 삶, 행복한 삶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을 찾는 고귀한 인간 품위의 거룩한 삶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고백이 더욱 감동을 줍니다.
“세계 곳곳에 전쟁으로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가는데 무슨 잔치. 수상의 기쁨은 그냥 조용히 간직하겠다."
말그대로 고결한 인간 품위와 예의의 반영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참으로 지혜의 샘이신, 영원한 생명이신, 참행복이신 주님을 선택하여 항구히 사랑으로 섬길 때 비로소 지혜롭고, 영원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9월부터 10월 지금까지 저를 참으로 행복하게 한 짧은 자작 두 편의 시를 또 나눕니다. 참 많이 나눴지만 늘 새롭고 좋습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늘 꽃같은 삶, 주님앞에 서듯 행복한 삶, 지혜로운 삶, 자유로운 삶, 영원한 삶입니다. 오늘 저는 참으로 지혜롭고 영원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비결을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첫째, “기도하라!”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사람이라해서 다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해서 사람입니다. 하늘의 주님께 기도하라고 직립인간直立人間에 어디서나 눈들면 하늘입니다. 어제 새로 뽑힌 추기경들에 대한 교황님의 환영사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을 특징짓는 세 자세를 강조했는데 그대로 기도의 자세입니다. “눈은 들어올리고, 손은 모으고, 발은 벗은”(eyes raised, hands joined, feet bare), 제가 바치는 만세칠창과 흡사한 자세입니다.
왜 기도하느냐? 기도할 때 모든 선물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입니다. 선물중의 참 좋은 선물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가 바로 지혜가 하느님의 선물임을 밝힙니다. 솔로몬의 고백입니다만 정말 공감이 가고 나의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했다.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고,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못한다. 온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지혜 예찬입니다. 이런 지혜는 그대로 주님의 현존입니다. 지혜를 참으로 체험한 자의 고백입니다. 정말 사랑하고 추구할 바 이런 지혜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이런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이런 지혜입니다.
둘째, “공부하라!”입니다. 주님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평생공부가 주님 공부요 구체적으로 하느님 말씀공부입니다. 어제 복음의 요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참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지혜입니다. 말씀은 빛이요 생명이요 영이요 주님의 현존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말씀이 더욱 하느님 말씀 공부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을 북돋웁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하듯 지혜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여 지킬수록 삶은 더욱 진실해지고 순수해지고 단순해지고 투명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정화되고 성화되며 위로와 치유도 받습니다.
셋째, “따라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참으로 우리에게는 참 좋은 반면교사가 됩니다. 그 좋은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잘 지켰는데 여전히 영원한 생명에 목말라 주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참으로 적절한 극단적 처방을 내리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아마도 이 시험을 통과할 부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자는 역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났다 합니다.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아니라 많은 재물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무거운 삶으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거처럼 어렵다’ 탄식하듯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물었고 주님은 부자에게도 구원의 은총이 가능함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계명을 지켜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아니라 이웃과 지닌 것을 나누고 섬기며 주님을 따를 때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부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관대해져 나눔과 섬김으로 주님을 따를 때 구원입니다. 사실 많은 재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욕심이 없고 사랑이 많아 나누기를 좋아하는 부자들도 있기 마련이며 이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두를 버리고 따른 이에게 축복을 말씀하십니다만 모두가 그렇게 불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정도만큼 사랑과 지혜로 나눔과 섬김의 삶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우리 삶은 안주의 삶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여정의 삶입니다. 나눔과 섬김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생각없이 주님을 따르는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욕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러니 따름의 여정은 그대로 비움의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나눔, 섬김, 따름, 비움”의 삶은 얼마나 멋진 삶인지요! 이런 삶이야 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이요, 이미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 행복한 삶, 자유로운 삶, 내적 부요의 삶, 영원한 삶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행복하게, 지혜롭게, 자유롭게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요 권리요 책임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부단히 버리고, 나누고, 섬기고, 비우고, 주님을 따르면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이 거룩한 미사중 일치하는 주님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이자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라, 공부하라, 따라라”는 주님의 당부를 힘껏, 한결같이 지키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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