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회개를 통한 은총의 감동을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루카 11,29-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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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13 | 조회수8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회개를 통한 은총의 감동을 / 연중 제28주간 월요일(루카 11,29-32) ‘군중이 모이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너희는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그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가 니네베에서 표징이 된 마냥, 사람의 아들도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너희를 단죄할 게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에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그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악한 세상을 향한 하느님 진노의 선포일까? 아니면 니네베 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자비와 사랑의 부르심일까? 그것은 요나의 마음에서 보면 알게다. 그는 니네베로 가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쩌면 공평하지 못하다고 여겼기에. 그래서 요나는 그분의 명을 거슬렸지만, 풍랑 속에서 고래 배 속에 사흘간 들어 있다가, 결국은 주님 뜻대로 니네베로 보내졌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밖에는 없단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의 회심 없이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냉엄함을 깨달아야만 하리라. 회개는 거짓을 몰아내어 거기에 주님을 모시는 거다. 거짓은 늘 불안을 주지만 주님께서는 꼭 평화만을 주신다. 돌이켜보아 우리에게 나름대로의 평화가 없다면, 무엇이 우리 주위를 지배하는지를 깊이 살펴볼 일이다. 쇄신 없이 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헛된 기대만은 저버리자. 그 악함이 깃든 건 자신의 책임일 터이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희망을 찾는 계기를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일 게다. 그건 요나의 표징은 회개의 촉구일뿐더러, 예수님 현존의 약속이기도 하기에. 니네베 인들의 회개는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그에 응답한 인간이 빚어낸 가히 혁명이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력이 아닌 당신과의 ‘오롯한 만남’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힘을 얻도록 하신다. 사실 요나의 표징은 우리에게 죄와 불신앙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게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 표징은 다름 아닌 ‘자유의 표징’이다. 참된 자유인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 안에서 변화의 희망을 증언하는 것이리라. 이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뿐만이 아니라 예수님 인격 자체가 표징이었다. 신앙은 어떤 표징이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과 체험으로 이르게 되는 믿음이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여태 보여 주신, 현존하는 지상최대의 표징이요 기적일 게다.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사실 우리 신앙인은 매일 매일을 기적 속에서 산다. 그것은 비단 호기심만이 아닌, 그곳에서 더욱 뜨겁게 기도하며 영적 목마름을 적셔 줄 시원한 삶을 갈구하기에. 하느님의 그 자비는 우리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한없이 참아 주시는 그분의 넓은 ‘자비와 사랑’을 깨달아야만 하리라. 그러기에 미사와 깊은 묵상으로 회개의 삶을 살자. 주님 앞으로 더 나아가 갈증을 푸는 은총의 삶을 살자. 일상의 기적을 모르면 감동도 모를게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주님 요구이며 요청이다. 회개하여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 그 자체로 이미 은총이다.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나서 그분과 화해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에. 회개에서 얻는 감동만이 언제나 큰 축복의 은총이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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