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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 29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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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10-13 조회수126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이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1,29) 

나이 들어가면서 가끔 저는 주책없이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아졌습니다. 특히 의미로운 가사가 담긴 노래를 듣거나 다른 사람들의 어머니와 관계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습니다. 사실 지난 목요일 부모님 묘를 다녀왔고, 토요일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때론 남들 보기에 무척 강하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전 여린 사람입니다. 다만 제 환경이 강한 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강한 척 살아왔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제 모습을 되찾아졌는지 약해지고 여려져서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지나온 세월, 제가 흘렀던 눈물을 한곳에 모아 놓으면 저의 모습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분은 『성경은 눈물로 쓰여 졌으며, 눈물로 읽는 자에게는 최고의 보화를 내려 주신다.』라고 하더군요. 

어느 순간 성서를 읽거나 묵상할 때 하느님 앞에서 제가 살아 온 삶의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 곧 마치 숲을 산책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처럼 어둡고 두렵고 힘들었을 때가 떠오르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이 눈물은 제가 어려울 때마다, 힘들 때마다 잊지 않으시고 저를 찾아 주시고 저를 위로해주셨던 하느님 손길의 따스함을 다시 느낄 때 흘린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단테의 지옥 편에 보면, 주인공은 돌연히 길을 잃게 되고 그때부터 계속되는 지옥의 층층을 시작하는 순간을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서 나는 캄캄한 숲에 들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역시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서 때론 그런 숲에 든 적이 있고 숲에서 길을 잃은 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해는 지고 숲은 어둡고 캄캄한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이 홀로 그 숲에서 날이 새어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단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느님께 매달려서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날들을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 근처에 태평스러운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소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모험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숲속 깊이 들어갔고,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불안했고 숲을 헤매다 점점 더 깊이 숲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숲을 뒤지면서 딸의 이름을 부르고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온밤을 지새우며 찾으려고 했지만, 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녀 또한 한밤중에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산을 헤매고 다니다 넘어지고 지쳐서, 공터의 커다란 바위 위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돌아간 이후에도 아버지는 계속해서 딸을 찾아 헤매다 새벽녘에서야 공터 한가운데 바위 위에 잠이 들어있는 딸아이를 발견하고 정신없이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갔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볐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아빠를 끌어안으며 외쳤습니다. “아빠, 드디어 아빠를 찾았어요.”라고.』

우리 모두 인생이란 여정을 걸으면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아빠 하느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빠 하느님을 찾는 게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를 아빠 하느님께서 찾아 헤매시면서 찾아오십니다. 회개란 무슨 특별한 표징을 받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표징입니다. (루11,32참조) 흔히 회개란 아빠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때 저는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요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자신 안에 숨지 않고 기다리며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찾기 위해 헤매시다 잠든 우리를 발견하신 아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일어난 그 소녀처럼 ‘아빠, 드디어 아빠를 찾았어요!’라고 아빠 하느님의 따뜻하고 사랑스런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 사랑스런 아빠 하느님의 품에 안겨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두려움이 아닌 평화를 누리면서, ‘살았다.’라는 안도의 숨을 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표징이란, 우리를 찾아 헤매시는 예수님이 바로 표징이시며,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아빠 하느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며,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표징을 다 안다고 해도 아빠 하느님의 마음, 구원 의지와 계획을 읽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일 뿐입니다. 결국 각 사람의 인생 여정이란 그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여 걷고, 그 길을 어떻게 걷던지 그 길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으실 수 있도록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아!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면 언제나 우리는 마음이 무딘 사람이며 악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11,3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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