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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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0-18 | 조회수15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루카 10,1-9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저는 미역국이나 육개장 같은 국물류를 참 좋아합니다. 따끈하고 든든한 것이 굳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간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따끈할 때는 참 맛있어 보이던 국물이 너무나 맛 없어 보이고 역할 때가 있습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국물을 보게 될 때이지요. 차갑게 식은 국에 기름이 엉겨있는 것을 보면, ‘이 음식이 이렇게나 기름진 거였나?’하는 생각이 들어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차갑게 식으면 단점이 보이는 것, 그것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땐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지요. 외모도 예쁘고, 하는 말이나 행동도 다 예쁘고, 어떤 실수를 하든 어떤 잘못을 하든 다 사랑스럽습니다. 흔히들 ‘콩깍지’가 씌였다고 하는 상태이지요. 그러나 사랑의 불꽃이 사그러들고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면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실망도 하게 되고, 그만큼 잔소리도 많아집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인 신앙도 그렇습니다. 세례 받은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새 신자였을 때는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감사함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기쁨에,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게 되었다는 설레임에 미사도 자주 참례하고, 기도도 빠뜨리지 않고 하려고 하며, 성경도 많이 읽고, 교회 내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이 사그러들고 나면 ‘하느님의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돈이, 명예가, 권력이 치고 들어와 하느님을 밀쳐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들을 먼저 챙기느라 하느님께 소홀히 하는 것이 영 마음 찜찜하고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내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원래 그런거라고, 늘 처음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렇게 조금씩 식어가다 나중엔 ‘정’으로 ‘의리’로 사는거라고 자신의 모습을 합리화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차갑게 식어버린 사랑을 다시 불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다시 일으킨 사랑의 불꽃을 오래도록 타오르게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의 소중함은 그 사람이 없는 ‘빈 자리’를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물건의 필요성 역시 그 물건이 없는 ‘부재’를 겪고 나서야 확실히 깨닫게 되지요. 즉 그 사람이 없는 상황, 그 물건이 없는 상황에 부딪혀 봄으로써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물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경우는 방법이 좀 다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이외의 다른 것들을 비워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재물에 의지했던 마음, 알게 모르게 사람에게 기댔던 마음들을 비워내야 비로소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하느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복음을 선포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재물에도 사람에도 기대지 말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가 보이고, 또 그래야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만 바라보고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 루카 복음사가가 마음 속에 그런 뜨거운 하느님 사랑을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보면 각 복음사가의 문체와 특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있는데, 루카 복음사가의 상징물은 ‘소’입니다. 농부가 이끄는대로 한 곳만 바라보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소처럼, 루카 복음사가가 ‘하느님 나라’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우직하게 따라가며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선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세속적인 조건이나 인간적인 능력에 기대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며 그분께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의 모범을 따라 다른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비워내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고 그분께 의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사그러들지 않고 활활 타올라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비추어줄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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