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12,5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4항에 보면,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세의 인생과 후세의 인생 자체의 의의와 그 상호 관계에 대하여 사람들이 품고 있는 끝없는 의문에 그 세대에 알맞은 방법으로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바라본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는데, 그 특징은 바로 심각하고도 신속한 변화로 인해 전 인류공동체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종교 생활에도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 편에서는 심각한 위기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현대 세계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분별하며 해석하고 복음의 빛으로 판단함으로써 계시된 진리가 항상 더욱 깊이 알려지고 더 잘 이해되고 더욱 적절히 표현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의무이며 특히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의 의무이다.』(사목44항)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당신의 파견 사명을 시작하면서 이사야 예언서 인용해 선포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4,21)하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곧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오늘과 더불어 모든 인류의 실존은 역사의 새로운 시간으로 돌입하였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오늘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결정적인 시간이 되는데 그 까닭은 바로 이 시간과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기 때문입니다.”(루11,20)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 동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고 그에 상응한 올바른 판단과 더불어 해결책을 탐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아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땅과 하늘의 징조는 물론 시대의 징표를 이해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10,23-24)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한 예언자와 임금들은 단지 그 시대의 예언자와 임금이 아닌 모든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과거의 사람들,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부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동시대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시대 징표나 시대정신을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부류를 지칭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들은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귀머거리(=청각장애인)이고 장님인 셈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판단에서 나온 그들의 해결책이나 처방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늘 상 공허하고 임시방편적인 처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 정신에 입각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접근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려고 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낡은 시대정신이나 역사의식을 고집하고 강요한다면 더 깊은 불화와 불의 그리고 부정이 만연되어 더 큰 분열을 초래하리라 봅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인류는 분명 새로운 시간을 맞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을 수 없습니다. (마태9,16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아는 제자들에게 곧 들이닥칠 마지막 날에 대하여 준비하고 기다릴 것을 거듭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스스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풀이하지 못하고 단지 틀에 박힌 시대의 징표를 제 방식대로 읽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견해를 자신들의 생각인 양 알고 살아가는 우매한 군중(?)을 보시고 한탄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도 가짜 뉴스가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가짜 뉴스가 너무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시도 지금도 군중들은 상식적으로 구름과 바람의 변화를 보고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정작 중요한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12,54.55) 예수님께서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통하여 시대의 징표를 알려주고 보여 주었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볼뿐 그 깊은 의미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대를 살았던 군중들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한 문제는 바로 보고 들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참된 들음과 스스로 생각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마치 타인의 생각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인 양 앵무새처럼 말할 뿐, 하느님 앞에 앉아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복음에 비춰 깊이 듣고 이를 기도를 통해서 내면화하지 않기에 헛소리, 뜬 소리 그리고 잡소리를 전달하고 퍼 날라다 댈 뿐입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그들의 무지입니다. (11,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나의 기적, 즉 회개의 설교 외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으며(11,29-30),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12,31)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이나 시선, 복음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징표를 읽고 올바른 판단을 앞세워 그에 따른 올바른 행동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12,57 참조) 나부터 먼저!! 과거 우리 자신들이 올바르게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도 못하고 실천하지 못함으로 동시대의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거짓된 가르침을 했다면 이제라도 늦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서둘러 사죄하며 화해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늦기 전에, 그러기에 더 이상 미뤄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우리 모습을 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연의 변화와 시대의 징조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해도 하느님 앞에 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아는 만큼 우리는 더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변화된 그만큼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인생의 의문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 주리라 믿습니다.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화답송 후렴/시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