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좁은 문 (루카13,2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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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10-29 | 조회수6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4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복음(루카13,22-30)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구원 받을 사람이 적다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이 가지않는 좁은 문이 구원이다. 사람(아담)이 육신의 욕망을 위해 뱁(사탄)의 유혹으로 먹은 그 선악의 법을 깨고 벗어난 진리의 길이 좁은 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 자유를 주시는 하느님께 들어가는 것이 좁은 문이다. 자신의 뜻을 부정, 부인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요한10,7-8)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도둑, 강도, 새 계약보다 먼저 온 옛 계약인 율법이다. 인간의 소원, 욕망을 위해 율법을 열심히 지킨 인간들의 의(義)가 모두 도둑이며 강도라 하심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숨, 사랑으로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양(羊), 그리스도인(人)이라면 주님보다 먼저 온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말을 치워야한다.(히브10,9) *탐욕(예삐뚜미아), 율의 욕망을 위해 희생제사를 열심히 드리는 것.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길을 좁은 문, 진리로 믿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삶을, 신앙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18,8ㄴ)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 자비와 사랑의 주님이 아닌 것 같다. 정의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지만, 곧 말씀은 들었지만 좁은 길인 주님의 뜻, 말씀을 벗어난 넓은 길로 인간들의 뜻, 세상의 것을 위한 말로 먹고 마셨기에 그것이 불의를 일삼는 것으로 정의의 주님께서 모른다 하심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구약의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든 예언자들, 그들도 진리를 말하고 살았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진리의 주님을 몰라, 실망하는 제자들에게~ (루가24,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구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세상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어 그리스도께 거저얻는 의(義)가 허황되고 어리석은 꼴찌로 보인다.(1코린1,18참조) 그래서 유다처럼 ‘내 죄는 내가 책임 진다’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세상 적으로 보면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주님은 그 멋지게 보이는 죽음이 당신의 대속을 헛되게 하는 큰 죄라고 하신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주님만을 의지하기에 행위의 열심을 부리지 않는다. 마리아처럼 깨달음을 위해 말씀에 머무르는 신앙을 산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마리아보다 마르타 처럼 열심 한 행위, 의로움이 첫째다(루가10,38-42)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슈바이쳐 박사 등을 교회 안에서도 본받자’고 권하듯 말이다. 어제 묵상했듯, 바벨, 카파르나움인 인간들의 공든 탑이 훌륭해 보이고 인간의 열심히 키운, 높고 푸른 나무가 하느님께서 열심히 세우신 십자가 나무보다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진리인 냥 가르치는 것, 멋져 보이지만 구원을 빼앗는 도둑이며 강도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 사흗날에 부활하신 그 진리(眞理)가, 복음(福音)이, 마음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 구절에서 사흗날의 대속, 그 진리를 말씀을 하신다.
은총,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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