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분을 / 연중 제30주간 목요일(루카 13,31-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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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30 | 조회수92 | 추천수3 | 반대(1)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분을 / 연중 제30주간 목요일(루카 13,31-35)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의 중심 무대인 예루살렘 성전은 ‘헤로데 왕’이 증축을 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했었고 서른일곱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유다인이 아니었기에 출생 콤플렉스를 늘 갖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려고 마카베오 가문의 미리암 공주와 재혼을 했고, 예루살렘 성전에도 손을 댔다. 성전은 기원전 20년에 시작을 해 무려 46년이나 걸렸단다. 그러나 기원후 66년부터 시작된 ‘유다 독립전쟁’은 그 여우같은 헤로데가 심혈을 기울였던 성전을 초토화시켰다. 70년 여름,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는 성전 안에서 결사 항전하던 유다 독립군들을 무자비하게 소탕했다. 이 과정에 성전은 돌 위에 돌이 얹혀 있지 못할 만큼 아주 심하게 파괴되었고, 겨우 남은 것은 지금도 잔존하는 통곡의 벽인 서쪽 성벽의 일부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신다. 그 성전파괴를 마음 아파하신 거다. 모든 것은 예언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을 거부한 결과라신다.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은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이라면 누구나 예언자일 게다. 그들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도외시하기에 분열이 있고 불화가 생겨난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해서, 복음이 이스라엘 밖으로 전해져 온 세상 끝까지 전해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계명을 어겨 우상 숭배를 하였다. 또한 하느님이 그토록 섬기라 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예언자들을 죽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예언자는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에.” 역사는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라나. 전쟁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투쟁을 살아가기에.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순된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하느님의 영의 승리를 선포하는 길을 걸으셨다. 자신을 죽이려는 헤로데의 그 여우같은 살기를 감히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폭력의 역사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려 하셨다. 사실 하느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도 세상 것에 너무나 많이 두리번거리며 산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윤리에 어긋나든 인생에 독이든 아무 생각 없이 몰린다. 삶의 중심이 없고 인생의 목표와 철학이 없기에 휘둘린다. 예수님은 굳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그분은 그 백성이 외아들마저도 죽이는 죄를 저지르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 그렇게 그분은 예루살렘에 참된 평화를 선사하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라고 자신을 가지고 말하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깨끗한 신앙인으로 충실히 살 수 있을까를 늘 묵상하면서 ‘믿음의 삶’을 누려야 할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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