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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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1-02 | 조회수10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1/3) : 연중 31주간 주일 * 제 1독서 : 긴명, 6.2-6 * 제2독서 : 히브 7, 23-28 * 복음 : 마르 12, 28-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연중 제 31주일, 11월의 첫 주일, 늦가을입니다. 가을도 아름답게 익어가고, 단풍도 아름답게 익어가고, 사랑도 아름답게 익어갑니다. “가을처럼 아름답고 싶습니다”(이채) 가을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의 등불 하나 켜 두고 싶습니다/ 가을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진실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엔/ 그리움이라 이름하는 것들을/ 깊은 가슴으로 섬기고 또 섬기며/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습니다// 오고 가는 인연의 옷깃이/ 쓸쓸한 바람으로 불어와/ 가을이 올 때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세월// 꽃으로 만나/ 낙엽으로 헤어지는/ 이 가을을 걷노라면/ 경건한 그 빛깔로 나도 물들고 싶습니다// 그대여!/ 잘 익으면 이렇듯 아름다운 것이/ 어디 가을뿐이겠습니까/ 그대와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그대와 나의 삶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 신앙의 원천을 밝혀줍니다. 곧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는 그 바탕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말씀이라고 불리는 ‘셰마 이스라일’을 들려줍니다. 유다인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맨 먼저 배우는 것이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되는 바로 이 “셰마”라는 신앙고백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이 기도를 정해놓고 드린다고 합니다. 또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를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 위해 이마와 왼쪽 팔에 경구갑을 부적처럼 붙들어 매고 다녔고(신명 4,8-9 참조), 옷자락에 술을 달고 다녔습니다(민수 15,37-39).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십계명에 6백 조항이 넘게 보태어져 실천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어느 계명이 큰 계명인지 토론이 계속되었는데,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도 이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었던 계명으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 29)
이 말씀은 먼저, ‘하느님의 존재’ 와 ‘우리의 존재와의 관계’에 대한 계시입니다. 곧 ‘한 분이신 우리 주님 하느님’과 ‘그분의 것, 곧 그분의 소유’의 관계를 드러내며, 바로 이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사랑’임을 밝혀줍니다. 곧 우리 신앙의 원천이요 근거요 바탕이 바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임을 밝혀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근거요 이유입니다. 그러니 이 관계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히:아헤브, 희:아가페오)은 본능적 호감과는 구별되는 ‘신실함’과 ‘충성’을 드러냅니다. 곧 ‘온 마음과 온 목숨과 온 정신과 온 힘을 다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12,34)고 할뿐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구약>의 ‘사랑의 계명’은 <신약>의 ‘사랑의 새 계명’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곧 모세가 말한 ‘구약의 계명’과 예수님의 ‘새 계명’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사랑의 계명과 <신약>의 사랑의 새 계명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구약>에서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둘째 계명의 ‘이웃 사랑’은 제한적입니다. 곧 여기서 말하는 ‘이웃’이란 동포로 한정하거나 함께 사는 이방인들까지를 포함시킬 뿐입니다(레위 19,3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가 10,30-37)에서 보여주듯이 무제약적, 무차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일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완전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마태 5,44-48). 또한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여 ‘이웃 사랑’의 시금석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완전히 바꾸어 새 계명으로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15,12)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시금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시하십니다. 또한, 나아가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신명 6,4-5)과 ‘이웃 사랑’(레위 19,18)을 한데 묶으시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십니다. 곧 사랑의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있을 뿐이요,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몸’이라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바로 ‘한 몸’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인 셈이 됩니다. 물론, 이 때 ‘한 몸’이란 ‘너의 몸이 내의 몸이고 나의 몸이 너의 몸’이라는 혼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 [새 천년기](24항)에서 표현한 대로, “나의 일부”인 형제들이란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한 몸의 지체’로서,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나의 일부’이기에, 형제의 아픔이 바로 나 자신의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먼저 ‘형제의 일부’가 되어주는 일로 이루어져 갑니다. 마찬가지로, 좀 더 확장해서 표현해본다면, 내가 형제의 일부가 되고 형제가 나의 일부이듯, ‘하느님의 일부’가 되고 ‘형제 사랑’은 곧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이처럼 ‘사랑의 이중계명’은 ‘새로운 관점’, ‘새로운 틀’을 요구합니다. 곧 ‘남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아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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