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사라질 헛된 것과 되돌아 올 것들에서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루카 14,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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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1-03 | 조회수6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사라질 헛된 것과 되돌아 올 것들에서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루카 14,12-14)
우리는 대체적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이나 더 나은 이를 식사 등에 초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반대 말씀을 하신다. 잔치에 초대하여 식사할 때에는 가난한 이, 장애인들을 더 초대하라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은 현세에서는 호의나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이들이라나. 예수님은 그들이 보답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대신 세상종말 그때에 꼭 갚으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신단다. 사회가 빈부의 격차가 더 양극화될수록 가난한 이, 약자들에 대한 손길은 예전보다는 더 필요할 게다. 요즈음 기부가 다소 좀 늘었다지만, 여전히 인색하단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지만, 그렇게 희생하는 일은 드물다. 누군가를 도울 때, 같은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는 게 일종의 거래이리라. 언젠가 그가 도와 줄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기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후일을 도모하는 이러한 거래 형태의 선행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언급하신다. 사실 주변의 버려진 그런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어쩜 돕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 자체가 초대하는 행위일 게다. 조금 낫다고, 조금 높은 위치에 있다고 쉽게 무시하려 들지만, 그래서는 결코 안 된다. 무시하면 그 당하는 이는 금방 느끼게 되어 있을 테니까. 어떤 경우에도 자존심 상하게 해선 안 된다. 그게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이다. 그들이 보답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보답하신다니까. 은총이 그와도 함께하기에.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는 친한 이들만이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부유하고 학식과 지위를 가진 이들만이 특별 대접받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초대받고 아픔과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이 더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공동체의 자리여야 할게다. 우리가 이를 실천하는 데 얼마나 주저하고 굼뜨며, 오히려 변명 거리를 찾기에 급급한지! 이에 가끔은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먼저 더 배려하고 보살피려는 삶을 살자.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으뜸 가르침이다. 예수님 가르침도 그렇게 하는 자만이 의인들이 부활할 때 보상을 받는단다. 그러나 내 능력을 과시해 훗날 보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라 할 수가? 베푼 건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훗날 언젠가는 다시 받을 것을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자. 지상의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지상서 나눈 것은 죽음과 함께 반드시 되돌아옴을 되새기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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