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14,13)
오래전 성악가 김청자님은 정년퇴임을 하고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났습니다. 그곳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았던 아이들을 돌보고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음악적인 탈렌트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며 인생 2막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뿌린 결실과도 같은 「루수빌로 희망 밴드」를 이끌고 귀국해서 음악회를 열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인터뷰에서 그녀는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받은 자가 가장 많이 나누어야 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저는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기에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마음도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영혼인 듯싶어서 부러움마저 듭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그녀는 실행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잔치를 베풀 때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우리의 초대를 받고, 그 보답으로 우리를 다시 초대할 수 없겠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고 그들에게 베푼 모든 것은 그들을 대신해서 의인들이, 아니 하느님께서 훗날에 보답해 주신다고 암시하십니다. 사실 우리네 삶의 경험으로 볼 때, 보답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게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봅니다. 예전 베트남에서 양성지도자로 생활할 때, 제가 살았던 수도원 인근의 심신 장애우들을 매년 성탄 때 초대해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함께 식사했었죠. 가난한 이들을 초대한다는 것은 많은 음식이나 선물을 준비하고 초대하는 것도 좋지만, 닫힌 문을 열어 집을 개방하고 들어오고 싶었던 수도원의 손님으로 초대받았다는 사실과 수도자들과 함께 미사도 봉헌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주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고자 하는 저희 수도자들의 따뜻한 마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나눔으로 정작 큰 기쁨과 행복은 초대받고 환대받은 그들보다 오히려 베푼 저희 자신들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느꼈을 가장 큰 기쁨은 자신들이 받은 음식이나 선물보다 자신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해 주고, 자신들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함께 공감해 주려는 저희의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결국 오늘 복음이 저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어떤 사람을 초대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초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 모든 인간의 행위는 정치적이다, 고 말하더군요. 그러기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행위의 이면에는 허기진 이해득실을 동반한다고 말입니다. 이 경우 초대는 향응이며 대접입니다. 이처럼, 대인관계에서 초대와 초대의 수락은 이러한 이해득실의 계산에 기초합니다. 이런 초대는 복음적 초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에서 기인한 초대는 아무런 계산도 없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의 사랑을 필요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랑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거나 보답받기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며, 베푸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나눔은 본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상적인 사랑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식탁에 초대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되받기 위해서나 보답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저 공짜로 무상으로 베푼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사랑의 정신이 우리들의 사랑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청자 교수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아름다운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실제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받은 것을 움켜 지지 않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그러기에 줄 수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아낌없이,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먹는 것이 남는다는 표현처럼 베푸는 것이 사실 인생에 남는 것입니다. 어차피 빈손으로 갈 인생살이 베풀면서 하늘에 보화를 쌓아둡시다. 그날에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맡기면서.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