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11.9)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 13 - 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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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11-08 | 조회수6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2,19)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성전은 모든 생명이 자라는 곳, 모든 것을 살게 하는 기쁨과 평화의 자리입니다. 생명의 물이 넘치는 곳,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이 곧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을 지어 봉헌한다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지어 주님께 바치는 일이 아닙니다. 성전을 봉헌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그 모든 자리에 하느님께서 함께 머무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란 저마다의 성전을 지어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헛된 욕망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내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 안에 성전을 봉헌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관점에서 오늘 축일의 의미를 깨닫고 되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 축일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28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계속되었던 로마 제국의 잔인했던 박해가 313년 밀라노 관용령 선포로 끝난 지 11년 후 324년에 당시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라테라노 성전 봉헌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성전을 주님께 봉헌할 때마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정성, 그리고 기도로 성전을 건립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어라.”(2,1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만이 아니라 모든 성전은 성도들의 온갖 정성을 쏟아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봉헌했지만, 막상 건립 후에는 다툼과 오만, 분열과 욕망, 탐욕과 착취가 가득 찬 타락한 육의 성전이 되어버렸기 성전을 허물어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성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며, 그 성전에 하느님께서 머물지 아니하고, 하느님께 진리와 영으로 예배드리지 아니하며, 기도의 집이 되지 못하면 그 성전은 한갓 빈껍데기와 같은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착취로 가득 찬 장사꾼의 집이 아닌, 하느님 사랑과 그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 찬 생명의 영혼들이 모이는 거룩한 집이 되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입니다. (루19,46참조) 이런 관점에서 오늘 축일의 독서와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은 모두 성전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드는 이들을 향해 성전을 향한 열정에서 거룩한 분노를 표출하시면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고 하신 성전은 부활 이후 “당신의 몸”(2,21)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으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게” (2,22) 됨으로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말씀으로 성전의 의미가 건축물이 아닌 사람의 몸과 사람들의 공동체로 이해될 수 있고 이해되는 발판이 마련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맥락에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3,16-17)하고 고백하고 있으며, 이로써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사람이 곧 성전이라는 관점을 더욱 분명하게 확증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도 교회를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의 모임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공의회 이전 신자들은 성전이나 성당이라고 하면 단순히 교회 건물만을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들 모임, 믿는 이들 모임 자체도 교회입니다. 이렇게 성전에 대한 개념도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 몸을 모시고 또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주님의 성체를 모신 다음엔 우리 몸이 바로 움직이는 감실이다, 라고 해도 결코 영성적으로 틀린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님 성전인 우리 각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답을 오늘 제1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47,1~2;8~9,12)는 이렇게 아름다운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솟아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흘러나오면서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데, 그 물이 닿는 곳마다 온갖 생명(생물+물고기 등)이 우글거리며 살아나고, 온갖 과일나무도 자라나 숲이 번창하며 온갖 것들이 살아납니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됩니다.” 바로 에제키엘 예언서의 비유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예수님 말씀으로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 역시 생명의 물과 같이 되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로 말미암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생명과 사랑으로 변하고 마침내 풍요로운 결실맺도록 하는 역할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건물이며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아를르의 성 체사리우스 주교의 다음 가르침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대성전 봉헌 축일을 기쁨 속에 지내고 싶다면 우리의 악한 행실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우리의 이 성전, 우리 각자의 영혼과 육신을 파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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