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2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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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1-09 | 조회수269 | 추천수7 | 반대(0) |
수학 시간에 ‘공약수와 교집합’을 배웠습니다. 공약수는 두 수 사이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수를 의미합니다. 교집합은 두 개 이상의 집합에서 공통으로 포함된 원소들로 이루어진 집합을 의미합니다. 즉, 두 집합에 모두 속한 원소들의 모임이 교집합입니다. 사람들은 문화나 역사가 다르더라도 인간으로서 공통된 가치를 지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 정의, 평등과 같은 가치들은 인류의 공약수와 같습니다. 여러 사회와 문화가 다르게 작동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가치가 바로 공약수입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입니다. 각기 다른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교집합’은 새로운 통찰과 발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배울 수 있고, 공통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공동체 형성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교집합을 통해 사회가 더욱 풍요롭게 발전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공약수와 교집합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도 공약수와 교집합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슴에 장미를 달아 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교회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인 하느님께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사랑을 주십니다. 성부인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성자인 하느님은 몸소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성령인 하느님은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효경, 굳셈, 의견, 지혜, 지식, 통달, 두려움의 은사를 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최대공약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합니다. 성직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성사를 집전합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마귀를 쫓아냅니다. 예언의 직무, 성사의 직무, 봉사의 직무가 있습니다. 수도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수도자는 복음 삼덕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정결, 순종, 청빈의 삶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평신도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평신도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이 강했던 백인대장을 칭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가진 걸 나누었던 자캐오를 칭찬하셨습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모두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최대공약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동반자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두 명의 과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부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미망인입니다. 남편이 없기에 가정도 돌봐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특별한 직업이 없다면 과부들의 생활은 궁핍하고 힘들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과부들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보여준 과부의 용기와 사랑의 실천은 그 뒤에 과부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올바른 가치 기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나의 개인적인 욕망을 따를 것인가 또는 나의 욕망을 희생하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요구를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 안에 어떤 가치 기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선택하기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수양이 필요합니다. 비록 올바른 가치 기준을 내 안에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충동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평소 나의 기준에 따라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이 충동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를 만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셋째로 기도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하고 남을 위해서 우리의 재능을 제공하려는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는 많은 내면적인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결국 실패하고 말리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도로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가치 기준을 확립하고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하는 사람이 하느님께 꾸준히 기도 한다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쩌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겁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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