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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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1-13 | 조회수13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11/13) : 연주 에32주간 수요일 * 제1독서 : 티토 3.1-7 * 복음 : 루카 17, 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복음>에서 치유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 단 한 명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고, 그것도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18)
만약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아홉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머지 아홉은 돌아와 감사드리지 않았을까? 또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이 감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 명의 나병환자와의 인터뷰”라는 존슨 그나나바라남의 꽁트에서 한 기자는 ‘시간의 기차’를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가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은 이들 중에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치유된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그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소. 혹시 재발할지 모르지 않소.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지 않았소.”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은 당신이 행하시는 선행에 대해 사람들에게 감사를 기대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나는 감사드리는 일을 그만두었소.” 또 다른 사람은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감사하는 일을 까맣게 잊었소.” 또 다른 사람은 “나는 감사를 드리고 싶었소. 그런데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았소. 나는 언제나 다수를 따르오. 그래서 나도 돌아가지 않았소.” 그런데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한 사실에 대한 기쁨에 머물며, ‘치유를 주신 분의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감사를 드린 것은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보다, 오히려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것은 ‘치유를 주신 분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돌아옴’과 ‘새로운 출발’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베풀어진 자비를 입고, 그에 합당한 ‘응답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를 새로운 구원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에 합당한 삶으로의 변화된 삶이 바로 믿음의 삶이요 기적이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와 감사드린 사마리아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나병의 ‘치유’가 구원인 것이 아니라, 그 치유가 하느님의 사랑임을 ‘믿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은 ‘감사’를 불러오고 감사에 합당한 삶으로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일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의식하면서, 모든 삶을 지속시켜주고 있는 많은 기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의 신비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눈!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활동하시는 그분을 볼 줄 아는 눈이야말로, 바로 감사의 눈입니다. 아멘.
*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6)
주님! 감사하게 하소서! 청하기도 전에 듣고 계시는 당신께 감사하게 하소서. 베풀어지기도 전에 이미 품으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치유보다 치유시키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 깃든 당신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무감각하지 않게 하시어, 치유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배은망덕은 말게 하소서! 아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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