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나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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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24 | 조회수70 | 추천수4 | 반대(1) 신고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나해] 요한 18,33ㄴ-37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가톨릭 교회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로서 세상 종말의 날에 심판자로 오심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라는 호칭이 꽤나 조심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으로 오신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려 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 세속적인 ‘왕’으로 오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은 양의 음식으로 오천 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신 후, 사람들이 당신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삼으려고 들자 그들을 피해 몸을 숨기셨지요.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믿고 따른다고 해서 세상의 왕들이 자기 신하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재물이나 권력을 보장하시는 분도 아니기에, 굳이 그분이 ‘왕’이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왜 지내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왕 축일을 지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왕과 ‘다르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도 세상의 왕들이 주는 것과 ‘다름’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세상의 주님이신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어떻게 해야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묵상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눈엣가시 같은 예수를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자기들에게는 죄인을 사형에 처할 권한이 없었기에 그럴 권한을 갖고 있는 로마의 총독에게 예수님을 고발한 겁니다. 감히 로마의 황제를 거스르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왕이 되려 했다는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서 말이지요. 당시 로마 제국은 반역죄를 저지른 죄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극형에 처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명 21,23)이기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면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게 증명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예수라는 자가 정말 반역을 도모하여 왕이 되고자 했는지 아닌지 그 사실만이 중요했을 뿐이지요. 그 사실여부만 명백하게 확인되면 로마 제국 법에 따라 처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세속의 권력자들은 자기가 가진 힘과 권력으로 백성들을 억압하고 그 위에 군림하며 세도를 부리려고 들지만,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써 지니신 힘과 권능으로 사람들을 섬기고 살리며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이룩하려고 하신 ‘하느님 나라’는 죄인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차가운 정의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다시 잘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따뜻한 자비가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강력한 힘을 결집하여 로마와 싸워 이김으로써 당신 나라를 세우고자 하셨다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파스카 축제기간이 절호의 기회였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시지 않고, 당신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 구원의 진리를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깨달아 자발적으로 따르기를 바라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씀에서 세속의 국가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하느님 나라의 차별점이 드러납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신하들이 당신을 이 세상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 세상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 세상의 왕국에서는 신하들이 싸우고 빼앗고 점령함으로써 왕을 영광스럽게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오히려 예수님이 내어주고 희생하고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하느님 나라의 통치원리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며 살리신다는 구원의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지요. 예수님께 있어서 그 진리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드러내야 할 본질적 메시지이자, 이 세상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실현해야 할 최종목표였습니다.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는 즉시 벌을 내리신다고, 그분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제물을 많이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며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이, 가난하여 속죄 제물을 바칠 수 없는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시면서,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단죄할 ‘죄인’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으로 치료하셔야 할 ‘환자’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며 죽은 사람들까지 되살리신 것은 모두 그런 하느님의 한 없는 자비를, 그런 분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그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온전히 실현되는 나라, 그래서 그 나라에 속한 모든 이가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는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이자 목표로 삼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나라에 들어가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느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들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듣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아코노’는 단순히 자기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수동적으로 듣는게 아니라, 주의를 집중해서 잘 듣고 들은 그대로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까지를 포괄하는 단어이지요. 즉 우리가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따름으로써 부모님이 그 말씀에 담아주신 좋은 의도와 뜻을 실현하는 것처럼, 주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함으로써 그분께서 그 말씀 안에 담아주신 구원의 진리가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그분의 뒤를 따르고, 그 순명과 따름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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