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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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08:38 | 조회수69 | 추천수1 | 반대(0) |
어릴 적에 시력이 좋았는데, 20년 전부터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살았는데, 도로 표시판이 잘 안 보여서 시력 검사했더니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다초점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안경을 쓰면 멀리 있는 건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 보였습니다. 시력 검사했더니 난시와 근시가 같이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지럽지만, 다초점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안경을 보내왔습니다. 지금 안경이 오래되었고, 탈색되어서 맞추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새 안경을 사용하는데 멀리 있는 건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 보였습니다. 알아보니 렌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시 안경을 한국에 보냈고, 새로 와서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경테가 좋아도, 렌즈가 좋아도 시력에 맞아야 합니다. 초점이 틀리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상황을 만날 때도 맥락을 잘 알면 이해가 쉽습니다. 군대에서 이런 맥락을 잘 모르는 병사를 ‘고문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고문관 소리 듣던 병사도 후임병을 가르치는 똑소리 나는 병사가 됩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은 ‘요한 묵시록’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으로, 초대 교회의 박해 상황 속에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자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상징적 언어와 비유,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통해 하느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새로운 미래를 드러내는 성경이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 현실을 두려워하라는 성경도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다가올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라는 성경이 아닙니다. 요한 묵시록은 교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을 말하는 성경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요한 묵시록의 맥락은 무엇일까요? 요한 묵시록은 하느님의 승리와 악의 종말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비록 세상에는 부정과 악이 존재하고 때로는 그 힘이 강해 보이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이 승리한다는 약속을 믿고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확신은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요한 묵시록은 또한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순결한 삶을 유지할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각 교회의 문제점과 장점을 지적하며 신자들에게 회개와 경각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 내용을 통해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더 나은 신앙의 길을 걸어가려는 결심을 새롭게 다질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세상과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영적 전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앙인들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며, 자기의 삶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묵시록이 말하는 신앙인들의 기도와 찬미는 하느님 나라의 힘이 되며, 이러한 영적 훈련을 통해 신자들은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처럼 신앙의 여정에서 겪는 도전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교훈서입니다. 신자들은 묵시록을 통해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새롭게 다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확실한 암호’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를 알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께서 자신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걸 꾸밈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감동이 있는 글들입니다.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암호’를 이웃 안에서, 내면의 부르심 안에서, 때로는 시련과 고통 중에서,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찾아내었습니다. 암호를 발견하기 전의 삶은 무의미하고 허망하였지만, 암호를 발현한 후의 삶은 희망과 기쁨이 계속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확실한 암호를 알고 계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운전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면 그분은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손에 스마트 폰 대신, 묵주를 들고 버스를 타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받기보다는 먼저 사랑하려고 하고, 이해받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이해하려는 분도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불평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하늘을 날아가는 구름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또한 암호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암호를 참 많은 곳에,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야 할,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끝에서 하느님과 대면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암호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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