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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2일 독서(1요한 2,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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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02 조회수89 추천수1 반대(0) 신고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 학자 기념일 제1독서(1요한 2,22-28)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5-26)

 

'영원한 생명'으로 번역된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ten zoen ten aionion)에서 '영원한'으로 번역된 '아이오니온'(aionion)의 원형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시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펼쳐질 영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생명은 미래적 약속일 뿐 아니라 현재적 약속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영생이 주어지게 되고 또한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약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드님과의 일치이다(1요한2,23). 아드님 없이는 생명이 없고,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요한3,36; 1요한5,12).

 

한편 '생명'으로 번역된 '조엔'(zoen)의 원형 '조에'(zoe)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가지게 될 생명을 뜻한다.

이 생명을 소유한 자에게는 부활의 약속과 천국의 희망이 주어지게 된다.

 

'속이는 자들'로 번역된 '톤 플라논톤'(ton planonton)에서 '플라논톤'(planonton)의 원형 '플라나오'(planao)는 '길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명사 '플라노스'(planos)에서 유래하며 바른 진리의 궤도를 걷고 있는 자를 이탈시켜 탈선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유혹하다', '탈선시키다' 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정관사를 동반하여 현재분사형으로 쓰였는데,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 활동하고 있었던 특정한 '적 그리스도'적 인물과 집단으로서 사도 요한 당시에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을 속이는 무리들로서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거짓된 교리를 주입시킴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되심을 믿지 못하게 하며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도록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의 특이한 점은 불신자들보다는 성도들을 속이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27)

 

27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기름부음'(토 크리스마; to chrisma)은 20절에도 나오지만 성도에게 임하는 성령을 지칭한다.  그 성령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본절에서 '주님께'에 해당하는 '아프 아우투'(ap autu)는 '그분에게서'(from Him)라는 의미로서 성령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나타낸다.

 

그런데 요한 복음 14장 16절, 26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주는 분은 '성부 하느님'인 반면에, 요한 복음 16장 7절에 따르면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요한 복음 15장 26절에 따르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사도들에게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성령을 부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아프 아우투'(ap autu)는 일차적으로는 '성부 하느님으로부터'라는 의미이며 이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라는 의미가 된다.

 

초대 교회 교부들이며 신앙의 옹호자들인 성 아타나시우스, 성 바실리오와 성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이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 주장하면서 동시에 성자에게서도 왔다는 사실을 반대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서방 신학자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렇게 해서 성도에게 임하신 성령은 성도의 영(심령) 안에(엔; en) 지속적으로 머무른다(메네이; menei).

 

사도 바오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1코린12,3). 그러한 성령은 성도의 영 안에서 슬퍼하기도 하시며(에페4,30), 탄식하기도 하시며(로마8,26),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도록 거룩한 열망을 일으키기도 하신다(갈라5,16.22.23).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27)

 

성도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몸소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요한14,26), '그리스도의 적'(적 그리스도)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가르칠'로 번역된 '디다스케'(didaske) '디다스코'(didasko)의 현재 가정법이고, '가르치십니다'로 번역된 '디다스케이'(didaskei)는 '디다스코'의 현재 직설법이다.

 

여기서 사용된 '디다스코'는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시간과 기간 동안 다 가르쳐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가르쳐주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들은 성령의 가르침보다는 사람의 가르침을 중요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가르침을 지적인 기름부음으로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영지(靈知)라는 지적 기름부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속이고 유혹하였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이단을 염두에 두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통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십니다'의 '디다스케이'(didaskei)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성령이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 14장 26절의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이와같이 진술하였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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