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1.18) | |||
---|---|---|---|---|
이전글 | 매일미사/2025년1월17일금요일[(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
다음글 | 아버지의 눈물 | |||
작성자김중애
![]() ![]() |
작성일2025-01-17 | 조회수176 | 추천수6 |
반대(0)
![]() |
2025년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어느 여행자가 마을 입구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묻습니다. “이 마을 사정은 어떠합니까? 이곳 주민들은 어떤가요?” 노인은 “그대가 최근에 갔던 곳의 사정은 어떠했소? 그곳 주민은 어떠했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여행자는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이 마을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오.” 다음날, 다른 여행자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노인은 마찬가지로 “그대가 최근에 갔던 곳의 사정은 어떠했소? 그곳 주민은 어떠했나요?” 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여행자는 인상을 쓰면서, “마을 전체가 끔찍했습니다. 하나같이 형편없는 사람이었고, 저한테 아주 못되게 굴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이 마을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오.” 자기가 어떤 마음을 간직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라집니다. 즉, 긍정적 마음으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모습이 보이고, 부정적 마음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이렇게 ‘나’의 문제인데, 우리는 늘 ‘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6)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율법 학자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놀라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죄의 용서와 질병의 치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시선으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면서, 중풍 병자의 병을 치유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을 간직하느냐에 따라서 하느님의 일이 세상에 드러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감춰질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일이 전혀 드러날 수 없는 법이지요. 오늘 복음의 놀라운 치유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율법 학자가 아닌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 덕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마르 2,5) 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있나요? ♡오늘의 명언♡ 행동이 반드시 행복을 안겨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행동 없는 행복이란 없다. (윌리엄 제임스) 사진설명: 성 안토니오 아빠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