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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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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19 조회수155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2주일 다해] 요한 2,1-11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영국의 낭만파 시인으로 유명한 바이런이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시험을 치를 때의 일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라는 문제가 출제되었고, 학생들이 열심히 답안을 쓰고 있는데 바이런은 무슨 일인지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담당교수가 그에게 최선을 다해 답안을 작성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는 시험 종료를 몇 분 앞둘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었지요. 이에 화가 난 교수가 백지로 제출하면 영점처리되어 학사경고를 받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바이런은 그제서야 답안지에 단 한 줄을 적어 제출하고는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한 줄 짜리 답안지는 그 대학 신학과 창립 이래 최초로 모든 교수들을 감동시킨 전설의 만점 답안지가 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고 합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우리는 지난 주에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덕분에 그분께서 몸을 담그신 물이 거룩해졌고, 그 물로 거행하는 세례가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주님께서 그 물로 일으키시는 첫번째 ‘표징’을 보게 됩니다. 표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세메이아’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그 무엇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혹은 표시를 가리키지요. 오늘 살펴보게 될 놀라운 사건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고 ‘표징’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시려고 오늘의 사건을 일으키신 게 아니라,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계획이 시작되었음을 장엄하게 선포하려고 하신 겁니다. 카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그분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도 참석했는데, 잔치가 한창이던 때에 그만 포도주가 동나고 말았습니다. 이는 잔치를 주최하는 신혼부부에게 있어 큰 낭패이기에 성모님은 예수님께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조르지 않고 다만 신혼부부의 딱한 처지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대하든 그건 아드님께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되 응답의 주도권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 드리고 철저히 순명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정해 보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어머님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시지요. 이 부분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런 느낌은 더 강해집니다. “여인이시여, 당신과 제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가련한 이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마음 따뜻한 분께서 어쩐 일인지 곤란에 처한 신혼부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시는 겁니다. 게다가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도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렵지요. 휘슬 소리가 울린 뒤에야 시작되는 스포츠 경기처럼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당신 소명도 정해진 시간 이후에만 실행하실 수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저의 때’는 당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드러나는 때이고, 그 때를 결정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올바르게 식별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그저 놀라운 사건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의도를 알아보고 따를 수 있을 때 주님은 당신 소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신 것이지요.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채신 성모님은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당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고 아들 예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시는 모습입니다. 명령이 있기도 전에 ‘이미 순명’하시는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나서야 그분이 주님이심을 믿었지만, 성모님은 표징 없이도 이미 당신 아들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믿고 그분 뜻에 철저히 순명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시든, 심지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로 결정하신다고 해도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루시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모님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표징의 두 가지 측면이 드러납니다. 첫째, 예수님은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이루실 능력을 지니셨지만 당신 혼자 일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도구로 삼아,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이루시지요. 둘째, 예수님께서 표징을 언제 어떻게 일으키시는지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분석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일꾼들은 물이 언제 어떻게 포도주로 변화되었는지 알지 못했지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구심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했더니 ‘어느 새’ 물이 포도주로, 그것도 과방장이 앞서 내어왔던 다른 어느 것보다 ‘좋다’고 인정할 정도로 맛과 품질이 좋은 포도주로 변화되었던 겁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주님을 굳게 믿고 그분께 철저히 순명하며 그분 뜻을 열심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평범한 일상을 하느님 사랑과 구원의 표징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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