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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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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2-11 조회수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마르 7,1-13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두 부류로 ‘분리’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즉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길을 걷는 거룩한 사람과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하느님께 불의를 저지르는 죄인으로 구분하려고 든 겁니다. 613가지나 되는,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서로 상충되기도 하는 율법규정들은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며 자기들의 ‘상대적’인 의로움을 과시하는 좋은 ‘무기’가 된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손 씻는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그 규정은 십계명도 아니고 율법의 핵심 규정도 아닌, 조상들의 만든 전통에 속하는 인위적인 규율입니다. 이교도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에 다녀오면 소위 ‘부정’을 타게 되니 손과 몸을 씻는 예식을 통해 자기에게 묻은 부정을 닦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위생절차’가 아니라, 규정에서 정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따라 몸을 씻는 일종의 ‘세레머니’인 셈입니다. 그런 보여주기식 절차를 식사 전과 후, 때에 따라서는 식사하는 도중에도 행했으니 밥 한 번 먹기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손 씻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죄인’취급까지 받아야 하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참으로 컸겠지요.

 

하지만 계명을 실천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외적인 예식이나 절차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와 목적을 제대로 알고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계명의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단식재나 금육재를 지킴에 있어 노인이나 병자들에게 ‘예외’를 적용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야 계명이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하는 답답한 ‘족쇄’가 되지 않습니다. 죄에 속박되지 않고 영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맘껏 누리게 해주는 주님의 멍에,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하는 신앙생활이 ‘코르반 관행’처럼 변질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코르반’이란 하느님께 드리는 서원을 뜻하지요. 내가 가진 재물을 언젠가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이 세상에서 그분 뜻을 이루기 위해 쓰겠다고 서원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서원을 핑계로 부모님께 마땅히 해야 할 효도를 게을리 한다면 그건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핑계로 하여 그분 뜻을 저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되지요. 그 어떤 인간적인 이유도 하느님의 뜻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핑계가 될 순 없습니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것은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마음과 최선을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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