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 2일 주일복음을 묵상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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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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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02 | 조회수81 | 추천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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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묵상글을 하나 올린 후에 한 번 정도 검토도 없이 피곤해 그냥 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몇 개월 만에 중간 중간에 잠을 깨고 약간 출출해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거의 하루를 잠으로 보냈습니다. 몇 개월 간 누적된 피로가 씻겨나가는 기분입니다. 하루 잠으로 보내서 그런지 몸은 깨운한 느낌인데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잠도 많이 자다보면 약간 비몽사몽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제 묵상글을 한번 다시 보니 간간이 오타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 오타를 가만 보면 철자의 오타가 아니고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또 정상적인 문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로 스스로가 찾아 수정할 수 있는 그런 오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충 어느 정도 오타를 몇 개 수정한 후에 주일 복음과 독서를 봤습니다. 깊게는 묵상을 하지 않았지만 딱 뜨오르는 묵상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주제는 말과 글이 될 것 같아서 그냥 올릴까 말까 하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 내용만 잠시 올려보겠습니다. 복음과 독서에 한정된 묵상을 하기보다는 좀 벗어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좀 더 색다르게 묵상할 수 있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말과 글은 형태만 다르다뿐이지 언어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것입니다. 말을 문자로 표기한 게 글입니다. 인류의 문명사를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문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평가합니다. 가령 어떤 위대한 사람의 사상이나 그가 남긴 지식 등이 만약 문자가 없었다면 그 당대의 업적으로만 남을 수 있었겠지만 그걸 문자라는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돼 후세에 전해져 그게 또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고 성장 발전을 해 인류가 문명의 꽃을 더 활짝 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어는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한 데에 이런 면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개인적인 일상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좋은 기능을 하고 유익한 면도 있지만 그게 잘못 사용된다면 살인의 무기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칼이 의사에게는 매쓰가 되지만 강도에게는 위협적인 무기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만들어내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나오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도 그렇습니다.
말이라는 언어는 녹음을 하지 않은 이상 사라지지만 그걸 기록으로 남기면 기록이 분실되지 않은 이상 그 내용은 살아 있는 하나의 역사가 됩니다. 그만큼 말과 글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가 한 달 전에 어떤 일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에서 파면되는 결정문을 보게 됐습니다. 역사에 남을 그런 결정문에도 초반에 보면 언어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문이 있는 걸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헌법재판관도 법문에는 정통할지 모르지만 언어적인 그런 구조까지 능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비문을 보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였습니다. 그냥 하나의 작은 바람이었겠지만 제가 만약 유시민 작가와 친분이 있었다면 꼭 한번 토론을 해보고 싶은 문장이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서 이런 걸로 토론을 하자고 한다면 다 쩔래쩔래할 것입니다.
근데 유 작가님은 아마 신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기질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평소 언어를 구사하는 화법에서 보면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유 작가님이 괴짜 아닌 괴짜 같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건 유 작가님이 괴짜라서 그런 게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의 논리로는 유 작가님의 논리를 반박할 힘이 부족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땐 자인을 해야 하는데 자인은 자존심상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유 작가님의 말이 궤변이라고 하며 스스로가 그런 궤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제가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언어라는 것은 이런 것처럼 아주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책이나 도덕적인 내용을 담은 좋은 책에서도 언급을 해 놓았겠지만 평소 우리는 글보다는 말 위주로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좀 더 각별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건 세상 조직에서도 중요하지만 신앙 안에서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열을 매긴다는 게 조금은 합리적이지 않은 면도 있지만 그만큼 신앙 안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싶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 안에서 우리가 판단하고 인식하는 언어는 우리의 영혼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냥 그게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저 살아 있는 동안만 효력을 가지는 게 거의 다 일반적인 일이지만 신앙 안에서는 살아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후에도 우리가 생전에 남긴 말과 글도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를 겁니다. 말은 기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생각에는 우리가 한 말이나 생각이 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성경 말씀을 잘 읽어보시면 명시적으로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실제 하느님은 그 내용을 다 아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만약 하느님이 그걸 모르신다고 하신다면 그분을 우리가 과연 하느님이시라고 인정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평소 말로는 설령 표현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꼭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것도 그 정도면 표현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디. 그래서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말도 선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말은 천국 마일리지로 쌓일 수 있을 거란 사실을 묵상해보면 평소 좀 더 말에 주의를 하며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글이라는 걸 쓰지만 살아서는 말과 글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나중에 하느님 앞에 가서 보니 그게 순전히 말과 글만 그랬다면 그 삶이 얼마나 가증스런 삶이 될지 생각해본다면 아찔할 것만 같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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