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참다 참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박 일주일간 링거주사에만 의지한 채 단식을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매정하게도 제 침대 앞쪽에 ‘절대 금식’ 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틀간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만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분이 병원 밥투정을 하면서 딱 한 숟가락만 뜬 식판을 물리며 ‘그냥 내어가라’ 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저런 저런!’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배가 출출해지는 9시 뉴스 시간 때마다 통닭이다, 족발이다, 몰래 야식을 즐기는 날라리 환자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어찌 그리도 야속한 사람들이 다 있던지요. ‘절대 금식’이란 표시판 때문인지 한번 먹어보라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생리 구조상 하루 세 끼 식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것입니다. 단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 욕구인 식욕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목표하는 특정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진단, 질병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단식은 하나의 목적성을 지닙니다. 사순시기 동안 그리스도 신자들은 작은 몸짓이지만 단식을 통해서 예수님 수난에 상징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 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 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막 걷기 시작한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 중에 악마로부터 받는 유혹도 많겠지만, 그 여정이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활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홀로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간의 긴 단식침묵 개인 피정을 실시하셨습니다. 피정기간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진정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빵과 권력과 재물이라는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용감히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피정을 보면 우리의 사순절이 어떠해야 하는지 즉시 답이 나오는군요.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질서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