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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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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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5:53 조회수43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1-46).”

1) 이 말씀의 핵심 주제는 ‘사랑 실천’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만 보고서 ‘작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관한 가르침으로만 생각하다가는,

‘불우이웃 돕기’만 잘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가르침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그런데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온 삶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온 삶으로’ 실행해야 할 ‘아버지의 뜻’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실천’입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영원한 생명을 받는 방법’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고(루카 10,25-28), 그 율법학자가 다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0,29-37).

2) 신앙인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사랑입니다.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해야 하고, ‘나보다 작은 이들’도

사랑해야 하고,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도 먼 곳에 있는 사람들도 사랑해야

하고,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사람들도, 식구들도, 친척들도

사랑해야 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사랑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비방하면서 적대시하는 자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또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를 사탄의 종교라고 비난하는 자들은?

그래도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3) ‘하느님 사랑’을 ‘신앙’으로, ‘이웃 사랑’을 ‘생활’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어 있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만일에 신앙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쭉정이’이고,

쭉정이 같은 신앙은 신앙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마태 3,12).

반대로 사랑은 있는데 신앙이 없다면?

자신의 자유 의지로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

사람이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될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4) ‘사랑 실천’에 대해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6-18).”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는,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말고”이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입니다.

5)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의 44절에 있는,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는, 뜻으로는 “주님, 주님께서 언제”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작은 이’가 되셨느냐고 묻는 말이고,

그렇게 되셨다는 것을 자기들이 알았다면 곧바로 가서

도와드렸을 텐데, 몰라서 못했다고 변명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그런 처지에 있는 이들이 곧 나다.”입니다.

사실 ‘작은 이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6-27).”

‘작은 이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이고, ‘나’입니다.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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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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