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최후 심판의 잣대 “사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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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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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0 | 조회수84 | 추천수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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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0.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최후 심판의 잣대 “사랑”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참 오랜만에 사순 제1주일 미사중 영성체후 기도후 잠시 공지사항에 준하는 말씀 전한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미사에 참석했던 신자들 마음속에도 깊이 각인됐을 것입니다. 미사강론후에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강론중 빠진 것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미사전례입니다.”
사랑의 성체성사요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가 성체성사입니다. 바로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질그릇에 나오는 옛 교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시편을 큰 소리로 노래하는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든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그 진리를 체험하기까지는 낯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느님만이 기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악마도 그 기도소리를 듣는다! 네가 비록 시편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악마는 의식한다. 그들은 듣고 떤다!”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 떠는 것이 사랑의 찬미인 시편성무일도 노래랍니다. “악마여, 주님을 찬미하라!”하면 악마는 질색하여 달아난다 합니다. 사랑의 선택-훈련-습관을 위해 평생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영성훈련보다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만세칠창후 바치는 사랑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 ‘사랑의 전사’이다.”
교황님의 정치에 대한 견해에도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정치는 삶이요 정치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능력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는 ‘애덕의 최고의 형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가톨릭신자는 자신의 최고의 것을 봉헌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20년 이상 알고 지내는 모녀분이 오랜만에 함께 피정을 왔고, 그 어머니가 율리안나 딸에 대한 칭찬이 좋아 격려하고 싶어 율리안나를 불러 그대로 전했습니다.
“우리 율리안나는 크게 성숙했고 도량도 크게 넓어졌습니다. 저는 율리안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성숙이요 사랑의 도량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가 사랑하라 연장되는 선물같은 날들입니다. 저역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쓰는 매일강론입니다.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이자 의무요, 임종시에도 남는 아쉬움은 더 사랑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일 것입니다.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인생인데 현대판 악령들린 사람들처럼 증오, 혐오하고 싸우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고 억울합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삶의 무지와 허무와 무의미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인생 사랑의 학교에 재학중인,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이요 평생공부가 사랑입니다. ‘평화학’, ‘화해학’이란 학문도 있다는 데 ‘사랑학’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학 박사되기가 소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오늘 복음에서처럼 최후심판의 잣대도 사랑입니다. 종파와 국적, 인종과 남녀 차별없이 온인류에 적용되는 사랑의 실천이 최후심판의 잣대입니다. 일반적 종교수행이나 관례나 관습이 아닌 실제적 사랑입니다. 추상적 사랑이 아니라 몸의 현실에 직결된 구체적 실제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웃이 곤궁중에 있었을 때, 즉
“1.굶주렸을 때, 2.목말랐을 때, 3.나그네였을 때, 4.헐벗을 때, 5.병들었을 때, 6.감옥에 있었을 때,”
도왔는가 묻습니다. 즉 6개의 구체적 항목이 열거됩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양들과 버림받은 염소들로 분리하면서 곤궁중에 있던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누구나 예외없이 또 하나의 예수님이라는 것이며 곤중에 있는 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해서 비로서 사람이요 사랑이 최후심판의 잣대이자 구원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에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고,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하듯 디테일에 강한 사랑임을 오늘 레위기에서 배웁니다. “나, 주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 맨처음에 나오고 구체적 부정적 ‘안된다’라는 이웃 사랑이 나열될 때 마다 후렴처럼 “나는 주님이다.”란 말마디가 못박듯이 나옵니다. 중간쯤에는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가 나오고 끝에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라는 말씀이 결론처럼 나옵니다.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사랑을 통해 입증되는, 거룩함이요 경외함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부정적으로 표현된 구체적 이웃사랑의 항목을 나열해 봅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히 준수해야할 구체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1.도둑질해서는 안된다. 2.속여서는 안된다. 3.사기해서는 안된다. 4.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5.이웃을 억눌러서는 안된다. 5.이웃의 것을 빼앗서는 안된다. 6.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7.귀먹은 이들에게 악담해서는 안된다. 8.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된다. 9.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10.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는 안된다. 11.세력있는 자라고 우대해서는 안된다. 12.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13.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는 안된다. 14.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15.앙갚음 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된다.”
긍정적인 사랑의 의무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3.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4.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5.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정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요 디테일에 강해야 하는 사랑인지 또 사랑이 모두요 사랑해서 비로소 사람임을, ‘사랑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최후심판의 잣대입니다. 평생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사랑이요 저절로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라는 겸허한 자각이 듭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사랑의 성체성사은총이 우리의 사랑실천에 좋은 도움을 줍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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