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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에는 기도의 방법이 전반에 설명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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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11 조회수47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구조를 보면 전반적인 기도의 개관 설명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해서 주님의 기도를 예로 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설명해 주십니다. 원래는 주일복음만 간단하게 올리는 식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일단은 올리게 됐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저도 오늘 우연히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이것도 우연히 영어성경을 보고 엄청 고민을 해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저는 이 부분은 언제 제가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있을 때 한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묵상이라기보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 '빈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은 잘못됐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이 번역 부분에 사용된 단어가 우리나라 말에 딱 떨어지는 말이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을 너무 포괄적으로 광의적인 의미로 퉁쳐서 번역을 하면 실제 이게 이런 의미로 사용된 연유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도 알 수가 있지만 그냥 한글 성경만 본 사람은 이렇게 번역하면 완전 엉뚱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빈말이라는 뜻을 국어사전에 일단 정의된 뜻으로 이해를 해도 완전히 엉터리 번역입니다. 논리적으로도 그렇고 문맥상으로도 의미가 상이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만 여러분에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참고하십시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중요한 의미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에 이 부분에 해당하는 의미만 놓고 봤을 때 기도는 다음과 같이 하면 안 된다고 나옵니다. 두 가지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하나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또 혹은 뭔가 말을 해도 어리석은 판단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말을 빨리하는 것 이것의 의미를 우리 성경에서는 그냥 빈말이라는 단어 하나에 함축시킨 것입니다. 기도를 이렇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럼 다시 역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의 요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말로서 한다는 전제 하에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천천히' 라는 말은 실제 이 뜻의 의미도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들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의미적으로 맞습니다. 또한 내용이 합리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사리에 맞는 이런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의미를 한국어 단어 하나로 표현을 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여기까지가 팩트입니다. 그럼 이 팩트를 기준으로 해서 마치 유권해석을 하듯이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기도의 상대방은 예수님이든지 하느님이 되실 것입니다. 근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들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 보면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벌써 기도의 내용을 다 아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중언부언해도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 말의 의도를 모르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사람도 상대방이 어떤 표현을 그 사람이 표현능력이 없어서 개떡같이 말을 해도 듣는 청자가 똑똑하면 찰떡같이 해석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사람과 비교 그 자체를 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럼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의 숨은 뜻은 바로 이런 것이지 않을까요? 단적으로 말해서 기도는 첫째가 사리에 맞는 기도여야 하며 제딴에는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진정한 의미의 기도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말이 된다면 이땐 그게 정확한 자기의 뜻이 전달된 기도가 될 수 없을 겁니다. 기도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의미할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셔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도 다 아실 것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그런 의미로 말씀을 하셨다고 이해를 해야 합리적인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걸 다르게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기도를 들어주시는 그 대상의 내용은 청자인 하느님이 아니시고 화자인 기도하는 본인 당사자가 기준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실 이 의미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난해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제가 표현을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의 생각입니다. 기도하는 그 내용 그 자체가 기도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그게 기도가 되는 것이지 기도가 마치 뭔가를 주문하면 그 주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식으로 기도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오늘 복음과 같이 마치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처럼 자꾸 조르고 조르면 귀찮아서라도 판결을 합리적으로 해서 요청을 들어주는 그런 내용으로 이해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해석상 그렇게 이해를 해야 합리적인 판단이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오늘 복음 7절과 8절의 내용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사실에 근거해 저의 판단을 전해드리는 것입니다. 

 

참고로 7절에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여기서 '들어 주시는' 이 의미는 어떤 부탁을 했을 때 그 부탁을 들어준다고 할 때 그 의미가 아님을 아셨으면 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단순히 아무 생각없이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그 뜻이 아니고 단순히 어떤 소리라든지 하는 것을 듣는 순수한 청각적인 내용의 뜻이라는 걸 분명히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잘못 이해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기도라는 것을 하는 이유는 부탁 같은 걸 하면 그 요청을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의식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또 하나 아셔야 할 게 이런 의미로 사용할 때 국어 어문규정을 따르면 '들어주다'처럼 붙여서 써야 합니다. 만약 띄어쓰면 그냥 귀로 소리를 듣는 그 의미만 있습니다. 또한 이 의미로 사용하게 됐을 땐 붙여써도 되고 띄어쓰기를 해도 국어 어문규정에는 둘 다 허용합니다. 사실 이 의미까지는 말씀드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늘 번역의 오류인지 아닌지 그걸 고민하다 보니 실제 이것까지도 고민을 해본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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