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이미 용서받았으니 용서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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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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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3-10 | 조회수6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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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7-15).”
1)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특별히 ‘용서’를 강조하시는데, 그것은 ‘주님의 기도’에 들어 있는 다른 기도들도 중요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서로 용서하는 일’이 우선 먼저 필요하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강조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면, ‘주님의 기도’를 ‘용서와 화해를 위한 기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찬의 전례 때에, 영성체를 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그 다음에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그 순서는, 먼저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해야만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또는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성체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심각하게 미워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과 서로 원수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바로 그런 상황에서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빈말’이 되고, 거짓 기도가 됩니다. 또 ‘평화의 인사’도 거짓 인사가 되어버립니다. 그런 상태에서 영성체를 한다면, 성체모독죄를 짓게 됩니다.>
2)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라는 말씀을 ‘용서’에 적용하면,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메시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용서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 18장에 있는,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씀(마태 18,33)의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고,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3)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미’ 용서하셨다는 것을 실감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용서의 은총’을 주신 일과, 그 은총을 받아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고, 즉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일이고, 반대로 형제를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일은,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을 받기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함으로써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로 해석되고,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만일에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또 ‘주님의 기도’에 들어 있는 “저희 잘못을(죄를) 용서하시고” 라는 기도는, 용서해 달라고 조르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주신 ‘용서의 은총’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는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용서하오니)” 라는 말이 무척 중요하게 됩니다. 이 기도는 형제를(이웃을) 용서하겠다고 다짐하는 기도이고, 동시에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또는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용서를 하고 싶어도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을 때, 그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청하는 기도.>
4)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라는 말씀은, “알고 계시고, 그것을 주신다.” 라는 뜻인데, 이 말씀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가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라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도는, 안 주시는 하느님께 달라고 떼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잘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일입니다. 심각한 가뭄 때에 온 세상에 고마운 단비가 내린다면, 큰 그릇을 준비한 사람은 많은 물을 얻게 될 것이고, 작은 그릇만 준비한 사람은 적은 물만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온 세상에 햇빛이 비칠 때, 해를 향해 서 있는 사람은 그 햇빛을 온 몸으로 받겠지만, 해를 등지고 돌아서 있는 사람은 자기 그림자만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 햇빛과 같고, 우리가 기도를 바치는 것은 해를 향해 서는 것과 같습니다. 그 간단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안 주신다고 불평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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