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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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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20 조회수59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오늘 복음 속 비유에는 ‘라자로’라는 이름의 가난한 병자가 등장합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엘 아자르’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인데, 그 이름에는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이름에 담긴 뜻을 이루면서 살아야 하는데 라자로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궁핍한 상황, 기대고 의지할 이 하나 없는 가련하고 외로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자기보다 부유하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미움과 원망을 쏟아내지도 않고 묵묵히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참고 견딘 것은, ‘하느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보살피시고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는 누구보다 자기 이름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뤄낸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도 그의 이름을 기억해주시지요.

 

반면, 오늘 비유 속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부자는 그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에 담긴 뜻보다 자기 욕망을 이루는데에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 말고 다른 이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떵떵 거리며 살았던 ‘이 세상’에서는 그가 왠만한 사람은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을지 모르나, 그가 삶을 마치고 가게 된 ‘저 세상’에서 그는 이름 조차 불분명한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가 하느님과 그분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라자로’라는 천사를,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을 ‘나 몰라라’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3)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비유에서 알아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부자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가 법적 도덕적 윤리적으로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우리 사회의 작고 약한 이들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지요. 즉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이 문제이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며, 이웃의 사정에 차갑고 무관심하게 대한 것이 패착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요. 부자는 자기가 욕망으로 쌓아올린 성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안에는 부족한 것 없이 다 있었고, 그 안에서 그와 가족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부자에게는 친구도 이웃도 심지어 하느님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심리적인 벽이, 저 세상에서는 그가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절벽’이 되었고 부자는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단절된 채 고통스러운 지옥 안에 갇히게 되었지요. 그러니 그 부자처럼 후회와 절망 속에서 영원히 울부짖고 싶지 않다면, 특별히 나쁜 짓만 안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부터 버려야겠습니다. 기회될 때마다 이웃 형제 자매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여 나중에 하느님 나라로 건너갈 튼튼한 다리를 미리미리 준비해둬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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