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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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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25 조회수48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5/25) : 부활 제6주일

* 제1독서 : 사도 15, 1-2. 22-29 * 제2독서 : 묵시 21, 10-14. 22-23

* 복음 : 요한 14, 23ㄴ-29

23ㄴ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오늘 <말씀전례>는 부활을 보증해주고 드러내주는 성령에 관한 말씀이 도드라집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에서 당면한 문제를 사도들이 성령 안에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라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요한은 성령께 사로잡히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 곧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묵시 21,10)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담화 안에 있는 ‘성령에 대한 파견 예고’ 장면 중의 일부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실행할 수 없다는 말씀이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지 못함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까닭임을 밝혀줍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조금만 지키고 실행하고 있다면, 우리가 당신을 조금만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당신을 사랑하는 이에게서 당신이 드러나고, 당신의 현존이 체험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 이름으로 보내실 아버지의 선물인 성령으로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구원행업을 설명하고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는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곧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이토록,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새로운 현존관계’를 유지하십니다.

결국, 오직 성령께서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니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고 하신 예수님의 선물 역시 성령께서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14,28)

‘갔다가 돌아온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가고 오심’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드러내줍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요, 십자가의 현양은 끝이 아니라 성부께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이별은 재회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기뻐해야 할 그 무엇이요, 희망의 예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모형제를 떠나보내는 일도 이와 같이 기뻐해야 할 일이 되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장례식은 이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헤어져 있다가 만나는 시간이요, 동시에 또다시 만나기 위한 출발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기쁨과 희망의 시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희망과 믿음을 간직하면, 당장의 그 어떤 슬픔과 고통도 아버지 안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14,28)라고 말씀은 우리를 의아하게 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라는 당신의 말씀과 모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완전히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고,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께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신성에 있어 아버지와 하나셨지만, 동시에 인성에 있어서는 더 위대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래의 영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믿게 하려고”(요한 14,29 참고)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사랑과 배려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크나 큰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드러내주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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