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 <승천이 사랑인 이유: 희망과 믿음의 중개> 복음: 루카 24,46-53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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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픕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승천의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떠남이 곧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승천이 사랑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양들을 앞장서 주님께로 가는 목자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양들을 성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들 옆에만 있다면 그들은 너무 의지만 하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합니다.
어떤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중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돈 버느라 바빠서 아들 하나 있는 것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은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망나니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재산을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손으로 한 달만 일해서 월급을 가져오면 재산을 물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제안합니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아들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여 이것이 자신이 번 돈이라며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돈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황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벌어오너라.”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또 한 달 동안 놀다가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 돈을 벽난로 불에 던졌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아들은 ‘그래, 아버지는 다 아시는구나. 돈 한 번 벌어보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손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매를 맞은 듯 아픈 것을 참으며 자신이 직접 번 돈을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돈을 꺼내기 위해 불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타들어 가는 돈을 끄집어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고생했다. 아들아. 내 모든 돈은 다 너의 것이다.”라며 아들은 인정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자기 재산을 맡길 정도로 성장 시키려면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재산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돈을 벌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멀리 있어야 합니다. 코끼리 새끼가 걷기 싫다고 누워버렸을 때 코끼리는 그 새끼를 기다려줄까요? 그러면 잘못된 버릇이 들어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코끼리 부모는 새끼를 지나쳐 갑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시며 당신 제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골반이 골절되어 병원에만 계셔야 했을 때 이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재활 과정을 힘겨워하셨습니다. 저희는 어머니께 희망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집’입니다. 본래 살던 집은 빌라 4층이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젠 골절된 것이 나으셔도 사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본당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모으신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꿈꾸던 집을 마련해 드렸고 병원에서 가끔 모셔 와 보여드리고 주무시게 해 드렸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재활을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 희망을 주시기 위해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오를 수 있도록 목적지에서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과 교회 사이에서 포도주, 곧 성령을 중재하십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리지만, 땅에 닿기 전에 날개로 받쳐줍니다. 희망이 있어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거기서 끝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집과 앞으로 다닐 성당에 머물면서 저를 도와주는 이들을 어머니께 보냅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줍니다.
농부가 아무리 맛있는 사과가 있어도 왕비를 통하지 않으면 임금에게 바로 봉헌할 수 없습니다. 왕비는 그 중재의 역할을 함으로써 왕의 은총이 농부에게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농부는 왕비를 통해 임금에 대한 믿음을 회복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이 아버지께 가시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희망과 믿음의 중개자가 되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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