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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 홍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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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01 조회수50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 홍보주일] 사도 1,1-11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유아들은 성장하며 정서적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분리불안’을 겪게 마련입니다. 엄마처럼 가장 밀착된 관계를 형성한 보호자와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겁니다. 어떤 아기들은 그 증상이 특히 심해서 엄마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엄마가 자기 눈 앞에 없으면 악을 써가며 서럽게 울기도 하지요. 그런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 존재가 사라졌다고, 자기 곁을 영영 떠나버렸다고 여기기에 커다란 상실감 속에서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증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안보여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자기를 안아주고 사랑해주는 경험이 반복되다보면, 자기 눈에 안보여도 사라진 것이 아니며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신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차츰 분리불안에서 벗어나 언젠가부터는 외출하는 엄마에게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다시 자기가 하던 놀이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이는 본격적으로 독립심과 사회성을 키워가며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사십 일”동안 당신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난 체험을 통해, 또한 그 주님께서 사라지셨다가 다시 나타나셔서 함께 하시는 여러 번의 체험을 통해, 제자들은 주님께서 자기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영 사라지신게 아님을, 보거나 만질 수 없어도 놀라운 섭리와 신비로 언제나 함께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즉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체험을 반복함으로써 분리불안을 극복하듯, 제자들도 예수님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체험을 통해 영적인 분리불안을 극복하고 주님께서 언제나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게 그들이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활짝 열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당신께서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다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당신 ‘뜻’에 따라 이루신 ‘신비’라고. 그러니 이제부터 사도들은 그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심을 믿는다고 해도, 그분의 물리적이고 실질적인 도움 없이 복음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하는건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중간에 어떤 위험이나 변수를 마주하게 될 지 예측할 수 없기에 두렵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반대세력들이 자신들을 핍박하고 위해를 가할 수 있기에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신 예수님은 그들이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한 가지를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당신이 하느님 나라로 떠나시고 나면 하느님께서 미리 약속하셨던 보호자, 즉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말이지요.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일인지 올바르게 식별할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고통과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담대하게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성령의 힘을 얻으려면 한 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있어 시련과 슬픔, 후회와 상처의 도시입니다. 예수님이 반대자들에게 배척과 핍박을 받다 돌아가셔야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그곳에 머무르라고 하시는 것은 주님을 따른다는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 삶과 저 멀리 동떨어진 이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순명으로 그 고된 현실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만이 성령의 힘을 얻어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말씀을 하신 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분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인 분리불안을 잘 극복하고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지를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완전히 멀어지신 게 아닙니다. 우리 곁을 영영 떠나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하면 그분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신뢰한다면 그 점을 분명히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함께 계신다고, 그분이 나를 보고 계신다고 생각할 때만 잘하는 ‘척’하는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지켜보고 계시지 않아도 언제나 한결같이 그분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충실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엄마가 보고 계셔야 겨우 공부하는 척만 하는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습니다. 엄마가 안보고 계셔도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얻지요. 그건 구원이라는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신뢰와 사랑에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실하고 꾸준하게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그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쁘게 지내지요. 그들은 더 이상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눈치를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답게, 행동과 삶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치는 신앙의 ‘본질’에 집중할 뿐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이용하여 제 욕망과 뜻을 이루려는 집착과 고집을 깨끗이 비워내고,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되어 그분과 함께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는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뿐입니다. 그런 모습을 닮아갈 때,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행복을 누리는 ‘승천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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