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악에서 보호받으려면 먼저 거룩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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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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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4 | 조회수72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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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1ㄷ-19).”
1)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를 13장의 ‘새 계명’과 합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두 말씀을 합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가 되어라.” 라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도 협력하는 일이고, 예수님의 당부 말씀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일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치의 은총’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만일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일치의 은총’을 주셔도, 우리 쪽에서 그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노력하지 않는 것은 은총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2) 12절에 있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라는 말의 ‘성경 말씀’은, 시편 41편 10절을 가리킵니다.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시편 41,10; 요한 13,18).”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라는 말은, 배반자 유다의 멸망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뜻도 아니고, 그의 배반이 정해져 있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구원을 받는 길이고, 배반하는 길은 멸망하는 길인데, 유다의 배반은 ‘멸망의 길’을 선택한 일이고, 그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 한 일입니다.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운명은 각자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배반자 유다의 운명을 미리 정해 놓지 않으셨고, 또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뽑으신 일은, 나중에 배반하라고 뽑으신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일이라면, 유다에게 아무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되는데, 유다는 그 자신이 스스로 배반의 길을 선택했고, 그래서 배반의 책임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3) 15절,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악에서 지켜 달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마태 28,19). 어쩌면 제자들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승천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할 사람이 없게 됩니다. <만일에 박해 때에 신앙인들이 전부 다 순교한다면, 지상에서 교회의 역사는 끝나버리게 됩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교회를 지켜야 하고, 복음 선포를 해야 합니다.>
4) 17절,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는, 사실상 앞의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시오.”와 ‘같은 요청’입니다. 진리로 거룩해지는 것과 악에서 보호받는 것은 같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악에서 보호받으려면 진리로 거룩해져야 하고, 진리로 거룩해지면 악에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거룩하다.’ 라는 말은, “성스럽다. 완전하다. 위대하다. 깨끗하다.”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거룩함의 ‘원형’은 ‘하느님의 거룩함’이고, 거룩함의 ‘원천’도 ‘하느님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겉모습이 아니라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라는 계명을 말씀하신 다음에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5,48). ‘하느님의 완전함’은 ‘하느님의 거룩함’과 같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하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의 완전함과 거룩함에 도달하는 길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길이고, 사실은 지름길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면서’(마태 23,5) 거룩한 사람인 척 했는데, 그들은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선자들이었을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7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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