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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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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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5 | 조회수140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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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0-26).”
1)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은,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여서 신앙인이 된 사람들인데, ‘이미’ 신앙인이 된 사람들과 ‘앞으로’ 신앙인이 될 사람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고, 사실상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지금 안 믿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잠재적인 예비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의 10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고, ‘모든 사람’을 향해서 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에,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 받으려고 해서 못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도 구원하려고 애를 쓰시지만, 스스로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2)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씀과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씀은 합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두 말씀을 합하면, “그들도 구원받게 해 주십시오.”입니다. 여기서 ‘하나가 되다.’는 인간들끼리만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즉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하느님과 예수님의 ‘안에’ 있게 되는 것도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는, 뜻으로는 “구원받으려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심판 때에 구원받는 것을 보면, 안 믿은 사람들도 그때서야 예수님을 믿겠지만, 심판이 끝나버린 뒤에 믿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심판 전에, 즉 ‘지금’ 해야 합니다.>
3)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는, 묵시록에 있는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ㄴ-4).”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묵시 22,3-4ㄱ).”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참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누리면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한 많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한’에서 해방되어서 기쁨과 행복과 평화만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희망하는 구원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씀은, ‘구원’이란,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과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보게 되기를’은, ‘참여하게 되기를’이라는 뜻입니다.
4)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든 것을, 특히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선포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는, 승천 후에도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의 구원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인간 구원 활동은 ‘사랑’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전부 다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시는 일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7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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