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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로우 묵상] 조각보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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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사도들의 증언이 진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작성자서하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05 조회수143 추천수7 반대(0) 신고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1)

 

요며칠..

묵상을 하면서도 글로 정리하는 것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모으려 애썼지만,

갈라지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내 속은 자꾸만 산란해졌습니다.

 

이번 대선을 지켜보며,

'진영'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혐오발언'이 너무 쉽게 던져지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하나 됨”과 “사랑 안의 일치”는

너무 멀고 이상적인 인말처럼 들려

가슴이 메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 정당, 지역, 세대, 성별, 가치관까지…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경청보다 낙인이, 대화보다 판단이 앞서는 시대.

심지어 종교인들조차

이 분열의 한복판에 서 있는 현실.

 

그래서 일까요?

예수님의 기도가 더욱 크게 들려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1)

 

예수님은 제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

바로 우리 시대의 모든 신앙인들을 위해

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 이 분열의 시대를 향해서도

간절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전한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머무는 용기 입니다.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격보다 경청을,

증오보다 기도를 선택하는 깨어 있는 신앙인들을 통해

예수님의 기도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라십니다.

 

진영의 벽을 넘는 신앙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선택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을 선택하는 것이고,

편 가르기를 넘어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의는

목소리 큰 편에 붙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관계를 회복시키고, 무너진 존재를 일으켜 회복시키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계속 선택하는 삶의 여정을 걷게됩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다시 떠올리며 선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의 성령께서

흩어진 언어를 하나로 모으셨듯,

우리 안의 두려움과 적대를 넘어

새로운 말을 주십시오.

‘적대’가 아닌 ‘대화’의 말,

'‘진영’이 아닌 ‘공동선’의 말,

'‘편견’이 아닌 ‘사랑’의 말.

 

이 시대에도

새로운 말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소서.

 

 

『조각보』

서로 다른 조각 천들이 하나로 이어져 따뜻한 무늬를 이루는 조각보의 이미지를 통해, 진정한 ‘하나 됨’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완전함은 결점 없는 상태가 아니며,

일치는 흠과 상처마저 품고 이어지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갈라지고 찢긴 마음들이 다시 모여, 세상에 하나의 위로가 되는 조각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슬로우묵상, 부활시기,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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