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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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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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7 | 조회수111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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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토요일] 요한 21,20-25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어제 복음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과정에 따르는 무거운 보속을 받았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핍박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더라도 그분께서 맡기신 양떼를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목자로서의 책임을, 주님의 뒤를 끝까지 따라야 할 제자로서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졌기에 그 책임과 소명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아직 마음으로 온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예수님의 ‘수제자’라고는 하지만, 자기 혼자만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는 것 같아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지요. 그래서인지 다른 제자들, 특히 평소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요한은 어떤 소명을 받게될 지, 그의 앞날에는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도 자신처럼 무겁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함께 걸으면 십자가의 길이 조금은 덜 힘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이렇게 묻지요.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질문에 속 시원하게 답해주지 않으십니다. 대신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베드로를 나무라십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만큼 큰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괜히 마음만 산란해질 뿐이지요. 나만 큰 고통을 겪게 하시는 주님을 원망하게 되고, 덜 고생하는 형제를 시기 질투하며 미워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주님을 따르는데에 큰 유혹이자 걸림돌이 되니 쓸 데 없는 것에 신경쓰지 말고 어떻게 하면 당신을 잘 따를 수 있을지만 생각하며 전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는 생긴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릅니다.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도 다르고 그분께서 맡기신 소명도 다르지요.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부분을 가지고 각자의 길을 따라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로 나아가는 겁니다. 베드로에게는 베드로만의 길이 있고, 요한에게는 요한만의 길이 있으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주신 그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것 뿐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해봐야 괴로움과 원망만 커집니다. 굳이 신경 안써도 되는 일을, 신경써봐야 내 생각만 복잡해지는 남의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봐야 나만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니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루카 9,62)가 되지 말고 저 앞에 계신 주님만 바라보며 묵묵히 나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 주님께서 팔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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