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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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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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07 | 조회수105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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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7.부활 제7주간 토요일
사도28,16-20.30-31 요한21,20-25
예수님 중심의 참 좋은 보완관계의 제자들 “베드로, 바오로, 애제자”
“의로우신 주님은 의로운 일을 사랑하시니, 올곧은 이는 당신 얼굴 뵈오리다.”(시편11,7)
참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요 변화무쌍한 변화입니다. 이런 삶의 흐름 중심에는 자연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늘 살아 활동하심을 믿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난 자리에 레오 교황이 들어섰고, 윤대통령이 떠난 자리에는 이대통령이 들어섰습니다. 두분 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앞서 세상에 보내준 하느님의 선물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의 흐름도 놀랍고 새롭습니다. 얼마전 수도원 원내 흰꽃들 가득했던 앵두나무들이였는데 어제는 그동안 빨갛게 익은 앵두를 다 땄습니다. 한동안 빨간 열매들을 보는 기쁨이 컸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써놓은 ‘관상의 기쁨’이란 글을 나눕니다.
“앵두 다 땄어요?” 자매의 옷도 얼굴도 앵두빛에 빨갛다
눈물같은 흰꽃잎들진 자리마다 빨간 기쁨으로
아기자기 귀엽게 익어간 앵두형제들이었는데
‘먹는 것’보다 ‘보는 것’이 관상의 기쁨이 더 좋았는 데 참 아쉽다”<2025.6.6.>
그러나 관상과 활동의 상호보완의 조화와 균형이 참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보이지 않는 중에도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의 선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기쁨과 감사의 일상을 이루어 줍니다. 내일은 대망의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끝나고 두 주인공, 베드로와 주님의 사랑을 받던 애제자가 나오며, 사도행전 역시 끝나며 바오로가 그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세분 모두의 중심에는 주 예수님의 자리하고 있습니다. 새삼 이 세분은 물론 우리 모두의 삶의 영원한 중심은 주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어제 교회 일치를 위해 애쓰는 다양한 사람들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만나 격려하신 레오 교황의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 예수님을 삶의 여정중 중심에 모십시오(Always keep the Lord Jesus at the center of your journeys). 이것이 본질적이며 모든 은사들은 이 목적에 봉사해야 합니다.”
삶의 여정중 삶의 중심에는 주 예수님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이며 그 빛나는 모범이 오늘의 세 제자인 베드로, 바오로, 애제자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세분이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세 분 다 경쟁관계이기 보다는 보완관계로 다 꼭 필요한 분들입니다. 참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은 주님을 중심으로 베드로와 애제자는 늘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다음 대화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이 둘의 관계를 신속히 지혜롭게 분별해 주십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주님은 애제자에 대한 불필요한 호기심의 관심을 접고 충실히 당신을 따르라는 명령인데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이 애제자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입니다. 주석자의 이 익명의 애제자에 설명이 참 신선하고 깊습니다. 바로 애제자의 이중적 신원입니다. 실제적 인물로써 애제자는 물론 죽었겠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모두와 일치를 이루는 상징적 인물인 “완벽한 제자로서의 애제자”는 예수님 재림시까지 늘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지속되는 한 교회의 중심에는 늘 영원히 애제자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가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The Church must never be without him). 우리 교회 공동체 주변을 잘 살펴보십시오. 틀림없이 바로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교회 공동체 중심에는 늘 관상의 애제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의 행적이 참 눈부시고 놀랍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로마에 도착했으며 사슬에 묶여있는 수인의 처지에서도 셋집에 이 년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환대합니다. 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참으로 자유로이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비록 바오로는 쇠사슬에 묶여있을지라도 말씀은 묶여있지 않습니다. 이 처지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고백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혀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있지 않습니다.”(2티모2,9). 참으로 말씀의 진리가, 주 예수님이 바오로를 참으로 자유롭게 했음을 봅니다.
베드로, 바오로, 애제자 셋 모두가 주님을 중심으로 각자 받은 사명에 충실하며 좋은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각자 제자리에서 제몫의 사명을 다하며 서로의 부족을 보완하며 주님 중심의 참 좋은 공동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태28,20).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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