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21~22)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공생활 중 제자들을 파견하셨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태 10장, 루카 9장) 이 두 번의 파견은 서로 다른 맥락 속에 있지만, 어딘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듯하여, 그 부분에 좀 머물러 보았습니다. 첫 번째 파견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루카 9,3) 이 파견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떠납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오직 복음뿐입니다. 길 위에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고, 어쩌면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 의존과 신뢰의 훈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제자들의 선교는 단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들어가는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파견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1–22) 두 번째 파견은 부활 이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죽음을 지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이번에는 성령을 숨처럼 불어넣으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더 이상 미숙한 초보자가 아니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목격한 사람들,? 곧 깨어난 존재로서 다시 파견됩니다. 첫 번째 파견이 '비움'이라면 두 번째 파견은 내면의 충만함에서 나오는 나눔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의 내면 깊이, 숨처럼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단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한 주님의 현존을 삶으로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를 품고,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권한을 지닌 사람으로서 파견됩니다. 이 두 파견을 묵상하면서, 존재의 성숙 과정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파견은 자아를 비우고, 작은 자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다른 이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두 번째 파견은 그 비워진 자리에 성령께서 오시고, 그 존재가 온전히 깨어날 때 비로소 회복과 사랑의 사명을 지닌 제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파견된다는 것은 단지 일이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사랑 안에서 보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성령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이미 성령의 파견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사랑 안에서 보내진 사람들로 살아갑시다. 
성령을 ‘숨’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우리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 생명을 일깨우고 깨어나게 하는 존재로 그려보았습니다. 입김이 얼어붙는 새벽처럼 차가운 삶의 순간 속에서도, 우리를 흔들며 생기를 회복시키고, 심장의 박동 속에서 함께 뛸 만큼 가까이 계심을 고백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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