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건태 루카 신부님_의로운 결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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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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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13 | 조회수29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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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예수님은 옛 계약의 핵심 법인 십계명을 인용하시며 말씀을 여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이 계명을 완성하기 위한 차원의 가르침입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곧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눈길로 결정되는 것이지, 죄를 짓는 행위의 순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여기서 음욕을 품는다는 것은 의지가 동반된 행위, 여자를 자기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고대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다에서도 약혼은 혼인과 똑같은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자는 혼인한 여자만이 아니라 약혼한 여자까지 포합됩니다. 예수님은 여자에 대한 남자의 모든 욕망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라도 남의 아내를 이미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적극적인 탐욕을 단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죄짓게 하는 요소나 요인, 여기서는 눈과 손에 대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몸에 대한 셈족의 의식에서, 눈은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욕망을 전하는 마음의 채널이며, 손은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빼어 던져 버려라” 또는 “잘라 던져 버려라”하는 말씀은 그 마음의 채널과 행동으로 옮기는 통로를 바로 잡기 위한 결단, 의로운 결단을 촉구하시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문자 그대로 빼 버리고 잘라 버린다 한들, 마음이 의롭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마음이 바로 서 있지 않다면, 죄로부터의 해방은 요원한 일로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아내를 버리는 행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신명 24,1을 인용하시는 것으로 보이나, 신명기의 법은 마태 19,9처럼 현대적 의미의 이혼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던 옛 사회 전통을 전제로 합니다. 남성 지배적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가 원하는 이혼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고, 버림받은 여자의 앞날은 매우 암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마태오는 여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불륜을 거스른 경우라는 표현이 ‘수치스러운 일’, ‘간음 행위’. ‘불법적 부부관계’(레위 18 참조) 등 여러 해석을 낳고 있으나, 그 어느 해석도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죄를 근절하기 위한 마음의 결단을 촉구하시면서,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함께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적 약자, 대표적으로 남성 위주의 사회 속에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함을 역설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는 마음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요소들이므로, 마음이 진실을 담고 의로움을 추구하며 평화를 따라 걷고자 할 때, 비로소 구원을 향해 정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바로 잡아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향하는 하루, 그럼으로써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를 누리며 구원의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은총 넘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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