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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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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15 조회수188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요한 16,12-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삼위일체”는 가톨릭 교회의 4대 교리중 하나입니다. 즉 천주교 신자라면 삼위일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막상 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구분은 되지만 분리는 되지 않는다’는, ‘셋이지만 셋이 아니라 하나’라는 그 알쏭달쏭하고 심오한 본질을 부족한 인간의 이성과 언어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도, 명확히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오직 하느님만 아시는 ‘신비’로 분류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삼위일체는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심오한 진리를 그저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지침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는지, 성부 하느님의 사랑, 성자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얼마나 깊이 일치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더 제대로 이해해보고자 부르는 명칭일 뿐이지요. 중요한 건 세 위격이신 하느님이 하나로 뭉쳐있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크고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느끼고 깨닫는 게 중요한 겁니다. 오늘은 이런 관점으로 삼위일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제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인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복음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눈 먼 사람, 귀 먹은 사람은 보고 듣게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으켜 주셨고,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눔의 은총도 베푸셨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의 군중이 배불리 먹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당신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께서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이유이자 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순명한 아브라함에게 드넓은 땅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며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무지와 불충으로 자꾸만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께 돌아오라고 간절히 읍소하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알고 믿어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친교’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원동력입니다. 성령의 힘을 입은 사도들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성령의 친교 덕분에 우리사이를 갈라놓는 세상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기회가 열린 겁니다. 또한 성령의 친교는 교회의 직분에 다양한 은사를 주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복음을 선포하는 은사, 치유의 은사 등등. 우리 각자가 그 은사들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같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게 만들어주는 것이, 즉 ‘다양성 안의 일치’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 위격의 활동은 모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당신의 그 충만한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순명으로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하심으로써 아버지와 모든 것을 공유하십니다. 그 권한으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께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우리가 하느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서로 다른 세 위격이 하나로 일치하여 긴밀히 협력하신다는 내용을 네 글자로 줄인 것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말이지요. 이런 믿음으로 가톨릭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 더 나아가 온 세상에 현존하시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십니다.

 

그러면 우리 편에서는 그런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 삶 속에서 삼위일체라는 사랑의 신비가 온전히 실현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의 생활화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그리스도교 호교론자인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살아 움직이신다. 성령께서는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으로, 성자는 기도를 도우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성부는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해 주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영적 생명 안에 활동하신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현존 의식 안에서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기도하면 삼위일체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친교가 점점 더 깊어져 마침내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행위가 하느님의 뜻인 진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진리의 길을 충실히 따를 의지와 힘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즉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충실히 따르도록 이끌어 주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면,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가득히 받아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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