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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신부님_2025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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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16 조회수67 추천수1 반대(0)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얼굴을 기쁨으로 충만한 미소로 가득합니다!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고통받던 민중들 어깨위에 지워졌던 무거운 짐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그 짐은 근현대사 안에서 우리 나라 백성들이 짊어졌던 짐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깜짝 놀랄 지경입니다.

불편한 이웃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그로 인한 수모와 피폐한 삶은 고스란히 백성들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안위는 손톱만큼도 없고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펼쳐나갔던 정신 나간 반민족, 친일, 독재자들의 횡포 역시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개헌이니, 유신이니, 계엄이니, 뭐니 하며 끊임없이 악법을 양산했고, 백성들에게 그릇된 이념과 역사관과 이념을 주입시키며, 선동하고 세뇌시켜 백성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어놓았는데, 이 역시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악법으로 전락하고 만 율법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마치 농부가 가축에게 짐을 지우듯이 율법의 철저한 준수라는 힘들고 괴로운 멍에를 백성들의 어깨에 올려놓았습니다.

결국 율법학자들은 구원과 생명을 위해 주어졌던 율법을 수백가지의 이해 못 할 세칙으로 만들어 그 어떤 힘센 장수도 짊어질 수 없는 짐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준수할 수 없는 규정들은 결국 율법학자 자신들도 견딜수 없는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해방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멍에이긴 한데, 부담스럽지 않고 편한 멍에를 들고 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말씀처럼 훨씬 철저하게 율법을 가르치시고, 힘든 요구를 하셨지만, 그 멍에는 바로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멍에는 율법학자들의 멍에처럼 인간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절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단 두가지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헌신과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무거운 짐이나 쓰라린 멍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무거운 짐이 된다면 그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의 멍에는 분명 위로와 기쁨의 멍에가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얼굴을 기쁨으로 충만한 미소로 가득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예수님의 진면모!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친 기도를 통해 우리는 참으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예수님의 진면모를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당대 유다 지도자들의 노선과는 너무나 판이한 것이었기에, 순식간에 예수님은 요주의 인물, 공공의 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지혜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지평을 대폭 확장시키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이 선언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지혜에 대한 종래의 고전적인 가르침, 고정관념을 180도 완전히 뒤집어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그간 가방끈이 길어, 나름 지혜롭다며 ‘개폼’ 잡고 다니던 사람들이 아주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청춘을 바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쌓아올린 세상적, 학문적 지혜는 이제 많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던 인간적 지혜가 영원한 생명과 구원, 참 진리를 얻는 데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자칭 지혜로운 사람들, 엄청난 학문적 성취를 통해 한 분야의 최고봉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유치원생보다 못한 사고를 하는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기에 요즘 와서 자주 생각하는 것이 편식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한 과목에 집중하지 말고, 여러 과목에 골고루 신경써야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를 쓰며 쌓아 올리고자 노력하는 학문적, 세상적, 인간적 지혜 위에, 인문학적, 영적, 정신적, 신앙적 지혜가 가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지혜에 대한 개념은 대폭 확장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간 자칭 지혜롭고 슬기로운 존재라고 자처했던 사람들, 비본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 내면적인 것을 놓쳐버린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움의 끝판왕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사실, 지혜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스스로 지혜의 최첨단을 걷고 있다고, 사실 가장 우둔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가장 똑똑한 척 했지만, 사실 가장 멍청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영세세 지속되는 또 다른 세상,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인식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여기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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